풍랑 속 렘브란트가 말합니다 “예수님을 꼭 붙잡으세요”

입력 2023-07-18 03:05
갈릴리 바다의 폭풍은 렘브란트가 그린 유일한 바다풍경으로 1633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미국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1990년 도난당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 성 패트릭 기념일(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최대 축제로 매년 3월 17일에 열린다) 다음날인 1990년 3월 18일 새벽 1시 24분,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의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경찰관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박물관 뜰에서 나는 소란 신고를 받고 확인차 왔다는 경찰관들의 말에 경비원은 의심 없이 문을 열었습니다. 경찰관들은 경비원이 공개수배범과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며 신분증을 요구하더니 이내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경찰로 위장한 강도였고 세계적인 명화 13점을 가지고 달아났습니다. 작품들은 총 5억 달러(약 5560억원) 상당의 가치를 가졌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작품들 중에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빛의 화가라 불리는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 ‘갈릴리 바다의 폭풍’(1633년작)도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은 마가복음 4장 35절부터 41절까지 기록된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덮여 있고 성난 파도가 배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집니다. 배는 절반쯤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습니다. 배 안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입니다. 뱃 머리에 있는 제자들은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몇몇은 돛을 힘껏 끌어당기고 또 다른 제자들은 이를 고정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밧줄을 잡으며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불가항력으로 보입니다. 이미 돛 줄 하나는 벌써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배 후미는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제자들의 얼굴에는 몰려오는 폭풍에 압도된 두려움이 서려 있습니다. 한 제자는 잔뜩 겁에 질린 채 잠들어 있는 예수님께 구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른 이는 성난 파도에 흔들리는 배 밖으로 구토를 합니다. 그들은 모두 폭풍우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 긴장 공포 혼란 체념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배에 탄 이들은 곧 죽게 생겼습니다.

63세 때의 렘브란트, 죽음을 눈앞에 둔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1669년작으로 영국 내셔널 갤러리.

그 와중에 배 안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파란색 옷을 입고 거센 바람에도 왼손으로 모자를 꼭 누르며 정면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화가 램브란트 자신입니다. 렘브란트는 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을 그려 넣었을까요. 렘브란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일지 모르지만 그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네 자녀 중 세 명이 죽고, 아내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작품처럼 폭풍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굴곡진 삶은 렘브란트를 깊은 내적 성찰로 이끌었습니다. 아픔과 상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신실하심에 대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대한 깊은 묵상을 작품 속 곳곳에 그려 넣었습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갈릴리 바다의 폭풍 속 렘브란트를 자세히 관찰하면 배안의 다른 제자들과 사뭇 달리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삼킬 폭풍 속에 있는데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의 한 손은 밧줄을 굳건히 잡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손은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모자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우리에게 말하듯 그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는 잠잠한 바다만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가 몰려오는 날도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배를 타고 계시니 붙잡고 놓지 말라 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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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PD choj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