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가 R&D 예산 157억 줄줄… 3분의 1 환수 못 해

입력 2023-07-13 04:06

산업기술혁신사업 연구·개발(R&D) 과제 참여기관이었던 A사는 지원받은 정부 예산 일부를 거래업체인 B사에 용역비로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당국이 현장점검을 나갔을 때 제조업을 한다는 B사엔 아무런 설비도, 직원도 없었다. A사는 이런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연구비를 빼돌렸던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A사가 5년간 받은 연구비 45억1000만원의 대부분인 44억8000만원을 환수조치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부정집행된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 예산이 15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12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국민일보가 입수한 두 부처의 ‘R&D 예산 부정집행 제재 처분 및 환수내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R&D 예산 부정집행 건수는 21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한 건도 16건이나 됐다.

부정집행건의 환수결정액은 156억9000만원에 달했다. 연평균 31억3000만원가량의 예산이 부정집행된 것으로 조사된 셈이다. 아직까지 환수하지 못한 금액은 36억3100만원으로 전체 환수결정액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전체 부처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하면 부정집행 규모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앞서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은 2020년 국가 R&D 사업 정부지원금 집행실태(2016~2018년)를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예산편성 부처 7곳을 점검한 결과 부정집행 건수는 267건, 환수결정액은 23억7000만원이었다. 이 같은 실태조사 이후에도 여전히 국가 예산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파악된 부정집행 금액 규모는 3배 더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연간 30조원에 이르는 국가 R&D 예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부정집행 종목별 사례를 보면 산업부의 경우 연구개발목적 외 사용이 83건으로 전체 적발건수 143건의 58%에 달했다. 다음이 인건비 유용(41건)이었다. 과기정통부의 경우 부정집행 적발된 68건 중 49건이 참여연구원 인건비 유용이었다. 모 대학 교수가 대학산학협력단 지도학생들에게 통장과 카드, 그리고 비밀번호와 도장까지 요구해 인건비 7134만8150원을 가로챈 사실이 수사로 드러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 혈세인 국책 연구비가 부정집행되고 있다는 문제가 수년간 지적됐지만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국책 연구비의 이권 카르텔에 대한 대대적 감사와 조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