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부동산 금융규제의 ‘금과옥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비롯한 각종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에서 DSR 규제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DSR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경제부처 수장들은 “DSR 규제를 일관성 있게 지속하겠다”면서 철옹성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DSR 40%룰’을 가계부채 증가를 막을 최후의 방패막으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DSR 규제에 ‘예외’를 두는 것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씩 예외를 인정해주다 보면 자칫 DSR이 누더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DSR은 어쩌다 ‘핵심 규제’ 부상했나
DSR은 등장한 지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전통적인 부동산 대출 규제 지표로는 LTV가 있었다. 정부는 2002년 투기과열지구에 대해 LTV 60% 이내 제한을 처음 도입했고, 이후 LTV는 노무현정부 때 40%까지 강화됐다. 2014년 박근혜정부 때는 전 지역 70%로 완화됐다가 문재인정부 때 다시 60%로 강화됐다. LTV는 도입 초기 부동산시장의 수요를 잡기 위한 요긴한 카드로 쓰였지만, 점차 금융규제 수단으로서의 실효성을 잃어갔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 탓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정부가 LTV 다음으로 찾은 새로운 규제 수단이다. 대출 심사 시 소득 등 부채상환능력을 본다는 점에서 LTV보다 강력한 대출 규제 수단으로 평가받았다.
이어 나온 DSR은 DTI와 기본 개념은 같지만, 한층 더 강력한 규제다. DTI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 외 다른 대출은 이자상환액만 더해 한도를 계산하지만, DSR은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정한다.
DSR이 핵심 규제로 부상한 건 2017~2018년이었다. 정부는 2018년 3월 시중은행을 시작으로 제2금융권까지 DSR 관리지표 기준을 확장시켰다. 다만 당시 DSR 규제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금처럼 DSR 규제를 대출자에게 직접 적용한 것은 2021년부터였다. 정부는 3단계 조정 과정을 거쳐 DSR 규제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LTV 등 기존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면서도, DSR 규제만은 기존 틀을 고수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장치를 ‘DSR 40%룰’로 보기 때문이다. LTV 등 다른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한 규제가 버티고 있다면 가계대출 부실이나 금융 불안 우려를 덜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12일 “DSR 규제의 본질은 소비자 보호 기능”이라며 “LTV가 금융회사 건전성 관리를 위한 규제라면, DSR은 이에 더해 차주(대출자)가 상환 능력에 비해 과도한 빚을 지지 않도록 제한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완화 요구 많은 DSR의 운명은
시장에서는 잊을만하면 DSR을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등장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현행 DSR 제한을 60%로 올려야 한다”며 “집값 급등기에 정한 기준을 하락 조정기인 현재까지 유지하는 것은 실수요자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DSR 40%룰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런 기조에는 감소세를 지속하던 가계대출이 최근 들썩이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9000억원 늘어난 1062조3000억원으로, 잔액 기준 사상 최대 규모였다. 증가폭은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가팔랐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된 가계대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DSR 규제에도 허점은 있다. DSR은 오로지 소득만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자산이 있어도 소득이 적은 이들은 DSR 규제에 더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령층·퇴직자 등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반대로 고정 소득이 높은 경우엔 자산이 없더라도 대출을 받는 데 유리하다. 다만 금융당국은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소득이 적으면서 자산이 많은 이들은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정책 대상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대환대출에 적용되는 DSR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도 커졌다. 대출 금액을 늘리지 않은 채 이자 부담만 덜고 싶은데 DSR 규제 때문에 대환대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연말 주택담보대출까지 대환대출 대상이 확대되면 이런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하나둘씩 DSR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규제 억제력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며 “규제 완화를 피하면서 대환대출을 원하는 이들을 도울 방법은 없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DSR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세자금대출까지 DSR에 포함해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DSR을 산정할 때 전세보증금 등 소득 외 상환 자금이 별도로 인정되는 대출은 제외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전세자금대출은 건당 대출 규모가 크고, 과도한 대출은 전셋값과 집값을 밀어 올려 주택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