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수출입은행 법정 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배가량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금이 조정된다면 수십조원 규모의 폴란드 방산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한 수은 자본금 상향 작업에 착수했다. 핵심은 의원입법 형태로 수은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수은 자본금 규모를 현재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리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상향 액수는 국회 논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는 1976년 1500억원에서 2014년 15조원으로 증액됐다. 그러나 공적수출신용기관(ECA)으로서 수출 금융을 지원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수은 자본금을 25조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냈지만 흐지부지됐다.
기재부는 수은 자본금 상향에 대해 특정 국가나 사업을 겨냥한 조치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방산업계 등에선 자본금 조정이 이뤄질 경우 가장 먼저 폴란드 방산 수출 사업이 지원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폴란드와 1차 방산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금액은 K-2전차 180대(4조4992억원)를 포함해 모두 17조원이다. 이 가운데 12조원에 대한 폴란드의 수출 금융 지원 요청이 있었고, 정부는 이를 검토하고 있다.
통상 대규모 사업 발주국은 부족한 재원 조달을 위해 입찰 당사국에 금융 주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금융지원 규모 등의 조건이 수주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거래 규모가 크고 안보상 민감한 분야인 방산 수출의 경우 보통 수은이나 무역보험공사 등이 금융지원을 해 왔다.
현재 정부와 폴란드 측은 2차 방산 계약을 놓고 추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K-2전차 820대와 K-9 자주포 360문 등 2차 계약 물량 가격은 약 30조원에 이른다. 폴란드는 2차 계약 조건으로 20조원 이상의 추가 금융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수은이 폴란드를 지원할 수 있는 한도는 얼마 남지 않았다. 수은법 시행령에 따르면 수은은 동일 차주에 대해 자기자본의 40~50%를 초과하는 신용공여(대출)를 할 수 없다. 현재 수은의 한 국가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는 최대 8조원가량인데, 자본금 한도가 배로 늘어나면 약 7조원의 대출 여력이 생기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13일 폴란드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대통령 순방길엔 국내 주요 방산업체가 대거 동행했다. 양국이 순방을 계기로 방산 수출 지원 관련 협의를 맺을 경우 자본금 조정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수의 국가나 사업에 정부의 수출 금융을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