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태어난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는 원래 의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집안이 궁핍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그리고 스무살 때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여느 가정주부처럼 집안일과 남편의 인쇄업을 돕던 스롱이 안스러웠던 28세 연상의 남편 김만식씨는 아내에게 자신의 취미인 당규 큐대를 쥐어줬다.
그 당규 큐대가 스롱과 가족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스롱은 9일 경기도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펼쳐진 프로당구 2023-2024시즌 2차 투어 ‘실크로드&안산 PBA-LPBA 챔피언십’ 여자프로당구(LPBA) 결승에서 세트 스코어 4대 3(6-11 11-3 11-4 5-11 11-7 7-11 9-2)으로 용현지(하이원리조트)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통산 여섯 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그는 김가영(하나카드)과 임정숙(크라운해태·이상 5회)을 제치고 여자부 LPBA 최다 우승 역사를 썼다. 때마침 경기가 열린 안산은 이주 노동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경기장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이 찾아와 스롱을 응원했다.
남편 김씨도 이날 스롱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몰래 찾았다고 한다. 스롱은 “온 줄도 몰랐는데 남편이 부끄러운지 자리를 피해서 같이 우승 사진도 못 찍었다”며 “지난 5∼6년 동안 한 번도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왔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그간 스롱은 선수생활에 집중한 탓에 집에 자주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짧은 기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건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며 당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남편 덕분이었다고 한다.
스롱은 2014년부터 꾸준히 아마추어 대회를 석권하며 두각을 보였다. 2017년에는 프로에 입문, 각종 국제대회 입상에 성공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20-2021시즌부터는 LPBA에 진출, 총 20개 대회에 출전해 6번이나 우승을 일궈냈다.
당구계 스타로 발돋움한 스롱은 ‘캄보디아 김연아’로도 불려왔다. 실력은 물론 남다른 선행으로 유명세를 타면서였다. 그는 프로 입문 후 모국인 캄보디아에 꾸준히 장학금을 기부해왔고, 아이들이 꿈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스롱은 “(앞으로도) 더 잘하고 더 많이 우승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