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자에겐 복음만이 해결책… 정체성·자존감 찾도록 돕는 일 힘써”

입력 2023-07-11 03:02
채왕규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4월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의 일명 ‘좀비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채왕규 목사 제공

1만여명의 마약 중독자들이 좀비처럼 거니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에서 27년째 이들을 돕고 있는 한인 목회자가 있다. 채왕규(56) 뉴비전교회 목사다. 채 목사는 매주 화요일 이 거리를 배회하는 마약 중독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독소를 빼는 ‘디톡스’를 권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채 목사는 9일 국민일보와의 줌(Zoom) 인터뷰에서 “마약 중독은 복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약 중독자들이 주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9년 전 뉴욕에 신학을 공부하러 왔다가 범죄 조직에 가담한 한인 청소년들이 마약에 중독된 채 방황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이 사역에 투신했다. 채 목사는 “1년에 단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상담할 수 있으면 투잡을 뛰어서라도 사역을 이어가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국민일보와의 줌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채 목사. 채왕규 목사 제공

채 목사의 다짐과는 별개로 미국 사회의 마약중독 문제는 악화일로다. 2021년 미국 질병통제센터 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와 총기사건을 합친 사망자 수보다 마약 펜타닐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더 많았다. 언론에 노출된 켄싱턴의 ‘좀비거리’는 충격적이다. 채 목사는 “필라델피아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주사기 공유로 인한 감염병 확산이라도 막겠다며 시 차원에서 주사기를 나눠주고 있다”고 전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마약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 순간에도 채 목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마약 중독은 초기·중기·말기로 구분되는데 켄싱턴 좀비 거리엔 대부분이 말기 중독자들이 나와 있다”며 “이제 더 추락할 곳이 없는 것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채 목사가 진단하는 한국의 마약 중독 상황은 어떨까. 그는 “필라델피아가 10단계 정도의 위험성이라면 한국은 1~2단계 수준”이라며 “마약사범을 끊으려면 초기 진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중독자를 타이르려는 등 초기 진압을 정적으로 하는데 이는 잘못된 조치다. 경찰에 반드시 알리고 감옥에 넣어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채 목사는 “학생들은 호기심이 생겨도 마약 근처에 가서는 안 되며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목회자들은 위기에 처한 영혼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곳에 상처를 입었는지 등 한 영혼의 영적 상태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사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