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명의 마약 중독자들이 좀비처럼 거니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에서 27년째 이들을 돕고 있는 한인 목회자가 있다. 채왕규(56) 뉴비전교회 목사다. 채 목사는 매주 화요일 이 거리를 배회하는 마약 중독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독소를 빼는 ‘디톡스’를 권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채 목사는 9일 국민일보와의 줌(Zoom) 인터뷰에서 “마약 중독은 복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약 중독자들이 주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9년 전 뉴욕에 신학을 공부하러 왔다가 범죄 조직에 가담한 한인 청소년들이 마약에 중독된 채 방황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이 사역에 투신했다. 채 목사는 “1년에 단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상담할 수 있으면 투잡을 뛰어서라도 사역을 이어가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채 목사의 다짐과는 별개로 미국 사회의 마약중독 문제는 악화일로다. 2021년 미국 질병통제센터 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와 총기사건을 합친 사망자 수보다 마약 펜타닐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더 많았다. 언론에 노출된 켄싱턴의 ‘좀비거리’는 충격적이다. 채 목사는 “필라델피아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주사기 공유로 인한 감염병 확산이라도 막겠다며 시 차원에서 주사기를 나눠주고 있다”고 전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마약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 순간에도 채 목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마약 중독은 초기·중기·말기로 구분되는데 켄싱턴 좀비 거리엔 대부분이 말기 중독자들이 나와 있다”며 “이제 더 추락할 곳이 없는 것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채 목사가 진단하는 한국의 마약 중독 상황은 어떨까. 그는 “필라델피아가 10단계 정도의 위험성이라면 한국은 1~2단계 수준”이라며 “마약사범을 끊으려면 초기 진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중독자를 타이르려는 등 초기 진압을 정적으로 하는데 이는 잘못된 조치다. 경찰에 반드시 알리고 감옥에 넣어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채 목사는 “학생들은 호기심이 생겨도 마약 근처에 가서는 안 되며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목회자들은 위기에 처한 영혼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곳에 상처를 입었는지 등 한 영혼의 영적 상태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사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