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상반되는 두 사건이 소개됩니다. 선민이라 자칭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와 이방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외에 장로들의 전통(유전)이 전해집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은 기록된 말씀과 구전으로 전해오는데,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이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그 기원이 모세이다 보니 장로들의 유전을 율법과 같은 권위로 여겼습니다. 그중 정결 예식은 출애굽기 30장 속 제사장이 물두멍에 손을 씻는 것을 근거로, 식사하기 전 반드시 손부터 팔꿈치까지 물로 씻고, 시장에 다녀오면 온몸을 물로 씻었습니다. 평소에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예수님이었는데, 그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이때다 싶어 예수님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 근거는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이 자랑처럼 내세우는 전통, 대표로 ‘고르반’이란 제도를 꼬집어 그들 안에 숨겨진 위선과 극단적인 이기심을 폭로합니다. 고르반은 자신의 재물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고르반을 선언한 사람은 재물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율법에 명시된 부모 공경의 법에서 제외됩니다. 성경이 아닌 장로들의 전통에서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고르반은 언제 하나님께 재물을 드린다는 것은 명시하지 않습니다. 결국, 평생 재산을 자기를 위해서는 써도 부모 공경에는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극단적 이기심과 욕심을, 전통이란 제도로 덮어주는 꼼수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기면서도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고르반 같은 전통은 겉으로는 율법을 더욱 잘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이라지만, 사실은 율법 앞에 굴복되지 않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의 편법에 불과한 것입니다.
반면 수로보니게 여인은 개 취급을 받는 모욕 속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만큼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인으로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은혜 앞에 굴복돼야 하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마 5:3)’의 실제를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내 앞에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절대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고수합니다. ‘자존심’ ‘중독’ ‘자살’ ‘위선’ ‘이념’ ‘고집’ ‘자신만의 신조’ ‘지위에 대한 체면’ 등을 내세웁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 앞에 굴복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권자이십니다. 그 어느 것도 그분의 주권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괴롭혔던 귀신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크리스천은 복음을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신념, 이념, 꿈과 별다른 것으로 봅니다. 복음과 세상에서의 성공, 명예를 달리 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 앞에 자존심까지 굴복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네 믿음이 크도다’며 극찬을 받았지만, 아무리 전통을 내세워도 굴복되지 않은 이기심과 욕심을 가진 유대인들은 부끄러울 정도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 중에 복음 앞에 굴복되지 않은 것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김종근 목사(용인 동백조은교회)
◇경기도 용인 동백조은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소속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제자 삼는 교회’의 비전을 갖고,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