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여행을 주제로 한 일화가 다수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국내 여행과 이집트나 소아시아 육로 여행, 그리고 배편을 통한 그리스와 로마로의 장거리 해상여행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고대 세계의 여행은 무척 고될 뿐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여행의 낭만을 원한다면 오히려 집에 머무는 게 더 즐겁고 안전했습니다. 가족은 생계와 안전을 책임지는 강력한 공동체라서 타국에 대한 동경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대대로 가족이 터 잡고 생활하는 지역을 벗어나 여행하는 것은 두렵고 무모한 일탈에 가까웠습니다.
아브라함의 대가족이 처음에는 갈대아인의 우르, 또다시 하란을 뒤로한 채 가나안으로 향한 것은 한 집안 전체의 운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창 12:1~5) 과도한 욕심으로 형에게 쫓겨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홀로 먼 길을 떠난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여행 역시 정상적일 수 없었습니다.(창 28:21~22) 그 때문에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배에 올랐다거나(욘 1:3) 탕자가 재산을 상속받아 먼 나라에 갔다는 이야기의 설정(눅 15:17~19)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예정된 불운을 떠올리게 됩니다.
불편한 도로는 물론 넉넉하지 않은 식수와 식량, 들짐승, 그리고 외진 곳을 지키고 있다가 행인의 재산과 목숨을 노리는 강도 때문에 이국땅에서 영영 불귀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랏일이나 사업, 국가적 건축과 유대인의 절기 지키기 말고는 장거리 여행을 피했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여행은 이븐 바투타(1304~1368) 같은 여행자가 등장한 14세기까지 사례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의 여행 리포트는 독보적입니다. 47년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안디옥)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됩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크리스티아노스’(Christianos)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안티오키아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는 40곳이 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지중해 동쪽 섬 키프로스(Cyprus, 구브로)를 거쳐 갈라티아 남부 지역(행 13:14~14:26)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제2차, 3차 선교여행까지 이방인의 땅, 그러니까 현재의 튀르키예와 그리스 일대를 대략 15년간 누볐습니다. 학자들은 바울의 여행 거리를 대략 1만5000㎞로 추산합니다.
도보 여행자가 뙤약볕에서 하루 30㎞를 걷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기껏 나귀와 쪽배의 도움으로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에서 겪은 어려움을 코린토스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소상하게 기록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바울은 물론 동시대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겪었을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행 11:24~27,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