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밖에 모른다… 더 위태로운 병원 밖 ‘그림자 아기’

입력 2023-07-10 04:04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9일 한 봉사자가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베이비박스 한쪽 면에 '출생일을 꼭 적어주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2일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출생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그림자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 및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임시신생아번호조차 없는 ‘병원 밖 출산’ 영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병원 밖 출산 영아들은 출생 기록조차 없어 위험이나 범죄 노출에 더 취약한 상황이지만, 이번 조사·수사 대상에서는 제외돼 있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그림자 아동 관련, 공식적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된 건수는 총 867건으로 이 중 789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사망이 확인된 아이는 27명인데, 14명은 범죄 혐의가 없어 종결됐으며 나머지 13명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출산 기록이 남아 있는 아이들조차 상당수가 유기·살해의 피해자가 되면서 출생 정보 확인 자체가 어려운 병원 밖 출산 아이의 실태는 훨씬 심각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의 병원 밖 출산 사례는 전체 출산의 1% 정도인 연간 100~200건 수준으로 추정된다.

주사랑공동체의 양승원 사무국장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 1418명 중 1045명이 출생 미등록 영아였는데, 이 가운데 고시원 등 병원 외 위험한 장소에서 출생한 아이들이 10%가량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병원 밖 출산의 경우 산모와 일부 가족 외엔 아이의 출생 사실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김윤신 조선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지난 5월 대한법의학회지에 실은 ‘영아유기·치사 범죄의 법의학적 분석’ 논문에서 2013~2021년 영아유기치사 10건, 영아유기 10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친모) 대부분이 병원 밖에서 출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영아유기 당시 산모 연령은 20대가 13건으로 65%를 차지했으며, 30대가 3건, 10대가 2건, 40대가 1건 순이었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목사는 “아이를 입양시키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생모 신상기록이 남는 출생신고를 하도록 한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들이 급증했었다”며 “출생통보제 역시 그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데, 산모와 아이 생명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출생통보제를 보완하기 위해 의료기관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국가가 보호하는 보호출산제 법제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병원 밖 출산 위험이 있는 산모를 의료기관 내로 유인하기 위한 제도지만, 친부모에 대한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양육 포기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어 입법화에 진통을 겪고 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