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우리의 소원은 한글…” 어르신에 필요한 사역하는 게 교회 사명

입력 2023-07-11 03:05
한희수(오른쪽) 화천동산교회 목사가 지난 5일 강원도 화천 간동문화센터에서 간동문해교실 어르신들과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강원도 화천군 간동문화센터는 어르신들의 학구열로 뜨거워진다. 지난 5일 찾은 센터에는 20여명의 어르신이 5개 반으로 나뉘어 한글을 읽고 쓰는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ㄱ’으로 시작하는 말은 구두, ‘ㄲ’은 까치, 그럼 ‘ㅋ’으로 시작하는 말은 뭐가 있을까요?” “칼국수!” “와, 정말 잘하셨어요. 박수!” 선생님의 질문에 곧잘 대답하는 어르신들은 칭찬 한 번에 금방 소녀처럼 웃는다. 간동문해교실의 정겨운 풍경이다.

이화순(87) 어르신은 “문해교실에 다닌 지 3~4년 정도 된 것 같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외로울 때도 있었는데 한글도 배우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며 “코로나19로 모이지 못한 기간이 있었는데 너무 오고 싶었다”고 웃었다. 방정희(78) 어르신은 “문해교실을 다니면서 자식들에게 문자를 써서 보냈더니 아이들이 많이 놀라고 신기해했다”면서 “선생님이 자상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 배우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동역 관계인 전광병(오른쪽) 간동성결교회 목사와 한 목사.

간동문해교실에서 봉사하는 5명의 선생님 중 2명은 목회자다. 한희수(67) 화천동산교회 목사는 2012년부터, 전광병(50) 간동성결교회 목사는 2018년부터 어르신들의 선생님이 됐다. 한 목사는 “지역의 많은 어르신, 특히 할머니들이 글자를 잘 모르신다. 읽고 쓰는 일을 도맡아 하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할머니들은 세상과 소통이 끊기게 된다”며 “문해교실은 이분들이 글을 배우며 성취감도 느끼고 친구들도 만나며 행복한 일생을 보내게 한다”고 설명했다.

어르신 삶의 원동력이 된 문해교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은 춘천역에서 차로 30여분 이상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 마을이다. 주민들 대다수는 60대 이상으로 홀로 살거나 병이 깊은 어르신도 많다. 이들에게 간동문해교실은 취미활동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몇십 년간 남편 병간호를 하면서 본인에게 깊은 우울증이 온 줄도 몰랐던 어르신이 수업을 듣고 미소를 띠었을 때, 혹은 직접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었다는 자랑을 들을 때 두 목회자는 문해교실의 존재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전 목사는 “한 어르신이 쓴 글 중에 ‘나이 80에 글눈을 떴다. 일평생 부럽던 가방 메고 학교 간다’는 내용이 감동적이었다. 어르신이 생각지도 못한 빛나는 표현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하고 어떨 땐 용돈까지 주려고 하실 때도 있다”고 전했다.

문해교실이 끝나면 점심시간이 이어진다. 교실로 사용하는 방 바로 옆 식당에는 화천동산교회와 간동성결교회 성도들 10여명이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간장제육볶음과 배춧국, 거기에 시원한 수박도 곁들여졌다. 문해교실 어르신뿐만 아니라 인근에 사는 어르신까지 50여명이 찾아왔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 “오늘도 맛있네, 고마워.” 어르신들의 인사에 땀에 젖은 봉사자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정창애(66) 간동성결교회 권사는 “장수식당이 시작된 지 20여년 됐다. 9시반쯤 센터에 식재료가 도착하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한다”며 “작게나마 어르신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시작했고, 맛있게 잘 드시는 모습에 지금까지 봉사를 이어온 것 같다. 무엇보다 교회가 지역에 필요한 섬김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다”고 웃었다.

주민에 필요한 사역하는 게 교회 사명

식사를 마치고 어르신들을 승합차에 태워 집에 모셔다드린 후에야 두 목회자의 일정이 끝이 났다. 간동문해교실과 장수식당은 간동면기독교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7개 교회가 시작했지만 지금은 두 교회만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 목사는 연합회 동력이 떨어져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문해교실 학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산골 마을에서는 교회끼리 성도를 놓고 경쟁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두 교회의 연합은 꾸준하다. 전 목사는 “인품도 훌륭하시고 경력도 오래된 한 목사님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 나는 그저 따라가는 것일 뿐”이라며 “둘 다 크지 않은 교회고 부교역자도 없어 서로 도울 일이 많이 생긴다. 문해교실과 장수식당도 협력해 진행하다 보니 화천군에서 인정을 받아 식비와 교재비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두 목회자 모두 산골교회에 자청해서 왔다. 문해교실과 장수식당을 진행하면서 성도가 늘거나 교회가 부흥되지는 않았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이기에 그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주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바랄 뿐이다.

한 목사는 “가끔 ‘내가 이 정도 봉사했으면 우리 교회에 몇 명은 나와야지, 나오는 사람 아무도 없어서 안 한다’는 목사님들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며 “교회가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곳임을 알리기만 해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간동문해교실 어르신들은 다음 달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2023 온세대 합창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합창연습도 하고 있다. 참가곡의 제목은 ‘우리의 소원은’인데 어르신이 쓴 글을 넣어 개사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우리의 소원은 한글/ 꿈에도 소원은 한글 공부/ 까막눈 열어줄 한글/ 글눈을 떠보자.’

화천=글·사진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