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바라보면 모든 풍경이 찬란하다. 골목마다 능소화가 피어 있고 겨울만 해도 앙상했던 나무들이 풍성한 잎으로 둘러싸여 있다. 계절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가. 우리는 일 년을 사계절로 분류하지만 매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창밖을 보고 있다 보면 달마다 다른 이름으로 계절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여름이지만 칠월은 유월보다 완연하고 짙다. 계절을 열 개 정도로 분류했다면 그 차이를 더 잘 실감할 수 있었을까. 문득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의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여름이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름’이라고 발음할 때 혀가 입천장을 부드럽게 스친 후 입술이 닫히며 마무리되는 일련의 움직임을 특히 좋아하고, 이 발음이 여름이라는 계절의 어지러움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름의 생명력에 감탄하지만 여름은 부패의 계절이다. 겨울에는 며칠이고 상온에 둘 수 있던 음식도 밖에 꺼내어 놓으면 반나절 만에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리고 만다. 냄새가 나고 검게 변한 음식은 버려진다. 먹으면 탈이 나거나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강력한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패를 죽음의 일부로 감각한다. 빛이 강할 때 그림자가 진해지듯이, 생명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계절은 죽음 역시도 쉽게 불러온다. 이 모습은 아이러니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우리가 죽음의 대상으로 보는 부패한 음식이 구더기와 병균의 입장에서는 가장 활발한 생명의 장소다. 그들의 생명과 우리의 생명이 상보적이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균의 삶과 죽음과 대립하면서도 공존하고 있듯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이하다. 그 균형은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썩어가는 음식과 눈부시고 찬란한 바다가 공존하고 있는 여름. 이 여름의 풍경을 몇 번이나 더 겪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본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