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강제징용 제3자 변제’ 결국 법관 판단 받는다

입력 2023-07-07 04:08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률대리인인 김세은, 임재성 변호사가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건물 앞에서 배상금 수용 거부에 따른 정부의 공탁 절차 개시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 공탁을 연이어 거부하면서 ‘일본 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배상금을 갚는 게 합당한지’ 문제가 결국 재판부 판단을 받게 됐다. 피해자(채권자) 측이 거부하는 ‘제3자 배상금 변제’가 가능한지에 대한 법원 판단은 그간 나온 적이 없다. 정부 해법을 놓고 수년간 법적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공탁은 6일 현재까지 광주지법, 수원지법, 전주지법 등에서 총 8건 불수리됐다. 법원 공탁관들은 모두 민법 제469조 1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당사자 의사표시로 허용하지 않는 경우 제3자가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일부 강제징용 피해자는 ‘일본이 아닌 국내 재단(제3자)의 배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 해당 조항과 쟁점이 맞닿아 있다.

외교부는 “법리상 승복하기 어렵다”며 이의신청을 냈고, 광주지법 사안은 재판부 판단을 받게 됐다. 다른 법원에서도 비슷한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하급심도 기각할 경우 항고 등을 거쳐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갈 수 있다.

통상 공탁은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 측이 배상금 액수 등에 이견이 있어 수령을 거부할 때 이뤄진다. 지연 이자가 쌓이는 것을 막으려고 채무자가 공탁을 거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할 때 공탁을 하는 것이라 공탁 신청 자체를 안 받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불수리 결정은 공무원 권한 범위 밖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원 공무원이 법적 문제를 이유로 공탁을 불수리한 결정이 인정된 사례가 있기는 하다. 대법원은 2009년 5월 변제 공탁을 수리하지 않은 공탁공무원 처분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당시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는 민법 469조 2항이 쟁점이 돼 이번 사건과 다소 차이는 있다.

강제징용 공탁의 경우 일부 피해자 측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3자인 재단이 배상에 나섰다. 민법 469조 1항에 관련 조문이 있지만 실제 사건에서 법리 판단이 내려진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채권자가 준다는 돈을 거부하는 경우도 흔치 않고, 아무 관련 없는 제3자가 돈을 대신 갚는 경우도 잘 없기 때문에 선례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469조 1항 ‘당사자 의사표시’ 해석에 따라 공탁 적법성이 가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피해자 측 대리인은 조문대로 당사자 거부 시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채권의 경우는 사안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사자 의사표시는 채무 관계를 맺을 당시 계약에서 미리 의사표시가 이뤄진 경우라고 봐야 한다”며 “금전 채권은 채무자(이번 사건의 경우 일본 기업)만 반대하지 않으면 누가 갚든지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게 일반론”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이형민 양한주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