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적연금을 받는 노년층의 소득세 부담을 덜기 위해 현재 연 1200만원 이하로 설정된 분리과세 기준을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사적연금 소득이 현 기준 액수를 넘는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고소득 노년층에 한정된 감세 정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사적연금 소득에 대한 저율 분리과세 혜택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사적연금이란 개인형 퇴직연금계좌(IRP)·각종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현행법상 사적연금 소득이 1년에 1200만원 이하인 국민은 3~5%의 저율 분리과세 혜택을 받는다. 대신 1200만원을 초과하면 15%의 세율로 분리과세를 하거나 종합소득세 과세표준에 합산해 6~45%에 이르는 높은 세율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가 도입된 2014년 이후 상승한 물가와 과세 구간 조정 등을 고려해 분리과세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6일 “소득세 최저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이 올해 1200만원에서 1400만원으로 올랐는데, 사적연금 분리과세 기준도 형평성을 고려해 상향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적연금으로 1년에 1200만원 이상을 수령하는 고령층은 드물다는 점이다. 국민일보가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세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구주가 55세(개인연금 수령 개시 연령) 이상인 전국의 1006만2579가구 중 사적연금으로 월 100만원 이상을 버는 가구는 11만3918가구(1.1%)에 불과했다. 이를 포함해 사적연금 소득이 있는 가구는 62만6718가구(6.2%)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기준으로도 사적연금 때문에 세금 부담을 느끼는 연금 수령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적연금은 국민연금보다 훨씬 역진성이 강한 연금인데, 국민연금 국고 지원에는 소극적인 정부가 (사적연금) 감세에는 적극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분리과세 자체가 극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제도인데 기준 상향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적연금은 중산층 이상의 전유물로 인식된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사적연금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국의 개인연금 가입률은 11.2%에 그쳤다. 특히 연소득 8000만원 이상인 과세대상 근로자의 가입률이 50%에 이른 반면 20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가입률은 0.1%에 불과했을 정도로 빈부격차가 뚜렷했다. 사업장별 퇴직연금 도입률도 27.2%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가입률 69.1%)에 집중된 실정이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현재의 연금 수령 상황만을 고려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를 미리 준비하는 측면에서 이번 대책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