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호황’을 맞고 있는 조선업에 ‘기술인력 빨간불’이 켜졌다. 현장직인 생산인력뿐 아니라 기술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이수한 인력들조차 ‘탈조선(脫造船)’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순수 연구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6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주요 조선사에서 보유한 연구인력과 설계인력을 포함한 기술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약 9400명으로 추산된다.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기 직전이던 지난 2014년과 비교하면 많이 축소됐다.
2014년에 조선업 기술인력은 약 1만4170명에 달했다. 이후 불황에 접어들면서 기술인력이 급감했다. 2016년 1만640명, 2018년 8180명, 2020년 998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통계 수치로는 2020년에 기술인력은 증가 흐름을 보였다. 다만, 이는 사내협력사 기술직(2090명)도 포함하며 집계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설계인력이고 국내 조선소에 종사하는 순수 연구인력은 1250명가량에 불과했다. 산업체와 국책연구소, 유관연구소 등을 포함해도 약 1800명으로 추정됐다. 2014년(2260명)에 비해 약 20% 줄었다.
업계와 대학에선 ‘탈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단어까지 등장했다. 탈조선은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하고도 조선사에 취업하거나 관련 대학원으로 진학하지 않고 다른 산업군을 선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조선업 불황기에 전공자들은 반도체, 전기·전자, 자동차 등으로 떠났다. 특히 학부의 경우 대학에서 부전공, 복수전공, 융합전공 등이 일반화하면서 인공지능(AI)이나 컴퓨터공학 같은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추세가 늘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해양공학과 졸업자가 전공을 살린 경우는 평균 33%에 불과했다. 전공자 3명 중 2명은 ‘탈조선’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탈조선은 한국과 수주 경쟁을 벌이는 일본 중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고급 기술인력 부족을 겪어 왔다. 조선해양 분야에서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오사카대 조선해양공학과의 학부 졸업생이 조선소에 취업하는 비율은 6.5%에 불과했다. 석사 졸업생 중 조선소 취업률은 26% 정도에 머물렀다. 중국도 최상위급 대학인 상하이 자오퉁대를 나온 학부생의 절반 이상은 해외 유학을 떠나거나 정보기술(IT) 기업, 금융회사로 눈을 돌렸다.
다른 산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임금이고 미래 비전이 불투명하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요 3개 조선사의 평균 연봉은 HD현대중공업 8470만원,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7300만원, 삼성중공업 8400만원이었다. SK이노베이션(1억5300만원), 삼성전자(1억3500만원), 현대자동차(1억500만원)와 비교해 크게 뒤진다.
조선사들은 지난해부터 호황기를 맞았지만, 처우·근무 환경 개선을 뚜렷하게 이루지 못해 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한화오션은 연말까지 전 부문에서 상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은 기술인력 확보다. 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의 HD한국조선해양 산하 조선사들도 지난 3일 일제히 경력 공고를 내고 기술·설계인력 확보에 나섰다. 삼성중공업도 해양 설계 엔지니어를 뽑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 때문에 조선업 내에서 인력 쟁탈전만 치열해졌다”고 전했다.
일부는 건설, 항공우주 분야 등으로 이동했던 인력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술인력이 다른 산업군으로 떠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호황기를 맞은 조선업으로 전공자뿐 아니라 스마트 선박, 친환경, 디지털 전환 등에 맞는 인력이 다수 유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기업 간 경쟁을 통한 인력 확보를 지양하고 개인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의 시행 등 여러 방안을 살펴보기를 권한다”면서 개인별 연봉제 도입, 개별 성과급 확대, 여성 기술인력 확대, 사내 벤처를 통한 개인 만족도 향상, 고연령 연구자 기술자의 근무상한연령 연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