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당신이 신고 있는 신발의 굽을 보라. 굽이 닳은 모양만 보더라도 걸음걸이를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물건에는 한 사람의 습관이나 취향, 오랫동안 몸에 밴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깃든다.
지난주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과 유품을 정리했다. 그 시간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작은 의식’과 같았다. 안경, 수첩, 목도장, 돋보기. 유품은 몇 개 없었다. 그마저 하도 오래 써서 낡은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검박한 분이었다. 달력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쓸모를 찾았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새것을 사지 않았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아껴 쓰셨다. 당신의 육신 또한 성실하게 흙을 일구며 온전히 사용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돋보기를 챙겼다. 언젠가 아버지가 돋보기로 시집을 읽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등 뒤에 내가 서 있는 줄 모르고 아버지는 방바닥에 내 시집을 펼쳐 놓았다. 돋보기로 한 글자씩 비춰가며 이따금 소리 내어 문장을 따라 읽었다. 나는 스스러워 그 모습을 못 본 체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눈앞이 금세 뿌옇게 흐려진다. 그 작고 마른 등을 자주 안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가책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유한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시간임을. 인간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몸을 빌려 사는 존재인 것을.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돋보기를 주머니에 넣고 아버지가 살았던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볏짚이 섞인 붉은 흙담. 우물이 있던 자리. 채마밭과 조그만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개울을 보았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슬프지만 죽음은 우리에게 비탄만을 주지 않는다. 남은 인생을 아끼며 살아야 하는 까닭을 되새기게 한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버지가 자식에게 바라는 뜻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