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박질친 주가… SK회장님이 워커힐로 간 까닭은

입력 2023-07-06 00:03 수정 2023-07-06 00:03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SK그룹 수뇌부가 총 출동하는 ‘확대경영회의’ 장소가 개최 며칠을 앞두고 갑자기 변경됐다. 예정된 장소는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였지만, 실제 회의는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됐다. 확대경영회의는 SK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경영전략을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로 최태원 회장이 주재한다.

일각에서는 회의 장소가 갑작스레 변경된 이유가 소액주주들 때문이라는 얘기가 돈다. SK그룹이 ‘SK소액주주연대’가 확대경영회의 개최 장소인 SKMS연구소에 트럭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황급히 회의 장소를 워커힐로 변경한 거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 심기 경호를 위한 선택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SK소액주주연대는 SK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1000여 명이 소속된 투자자 모임이다. 자사주 매입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을 요구하며 서울 SK본사 앞에서 1인시위 등을 진행해오고 있다. SK소액주주연대 관계자는 5일 “이번에는 실제 SK그룹 경영진, 특히 최태원 그룹 회장을 타깃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어 확대경영회의가 열리는 이천에서 트럭시위를 계획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그룹 측은 소액주주연대가 집회를 계획한 것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장소를 옮긴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SK 고위관계자는 “회의 개최를 앞두고 최 회장께서 다리를 다친 것 등을 감안해 바꾼 것이지 소액주주들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만원 간다던 주가는 14만원대


소액주주들이 생업을 뒤로하고 최 회장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SK 계열사들의 장기적인 주가 부진 때문이다. SK 지주회사인 SK㈜가 대표적이다. 이날 14만7200원에 마감한 SK㈜의 주가는 올들어서만 20.43% 내렸다. SK㈜ 소속 고위 임원은 2021년 3월 29일 그룹 유튜브 채널에서 “2025년까지 주가를 200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SK㈜의 주가는 26만8500원이었다.

하지만 해당 발언 이후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이날 기준 SK㈜의 시가총액은 10조7748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SK 지주사를 두 번 팔아도 에코프로 하나 사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날 기준 에코프로의 시가총액은 25조1099원이다.

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로 주가가 오른 하이닉스 등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면 SK 대부분 계열사의 주가 흐름도 부진하다. 최근 1년을 기준으로 SK바이오사이언스는 36.95% 하락했고, SK케미칼(-29.06%) SK텔레콤(-16.26%)도 하락세다. 코로나19 팬데믹 유동성 장세에서 성공적으로 상장했던 SK IET(아이이티)의 경우 이날 종가는 9만4600원으로 2021년 5월 당시 공모가(10만5000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에서 분할 상장한 SK스퀘어의 이날 종가는 4만6200원이다. 분할 상장 당시 시초가인 8만2000원에서 반 토막 가까이 하락했다. SK스퀘어는 자회사 원스토어와 SK쉴더스를 증시에 차례로 상장시킬 계획이었지만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모두 실패했다. SK쉴더스는 스웨덴 계열 사모펀드(PEF)로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다.


4대 그룹과 비교해도 SK의 주가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가 200만원’을 약속했던 2021년 3월 29일 SK그룹 상장사 시가총액의 총합은 187조3242억원으로 집계됐지만, 전날 기준 159조4087억원으로 14.90% 쪼그라들었다. 반면 LG그룹은 2차전지 관련주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 등의 영향으로 같은 기간 76.10% 급증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각각 7.80%, 3.08% 하락했다.

문어발 확장했지만 성과는 아직

SK그룹의 주가 하락세는 SK의 공격적인 투자가 오히려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에너지 계열사 SK이노베이션의 비상장 자회사인 2차전지 업체 SK온은 적자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에만 9912억원의 적자를 내며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도 344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SK그룹이 기존 사업의 내실을 강화하기보다는 외연 확장에 치중한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그룹은 최근 1년 반 새 가장 많이 계열사가 늘어난 그룹이다. 2021년 8월 156곳이었던 계열사는 2023년 2월 기준 201개로 국내 대기업 집단 중에서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문어발 확장’으로 정치권에서 비판을 받았던 카카오도 126개로 SK그룹보다 75개나 적었다.


SK와 대조적으로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53개에서 59개로, 삼성그룹은 59개에서 63개로 각각 6개, 4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시가총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LG그룹의 경우 오히려 71개에서 63개로 줄었다.

최근에는 SK이노베이션이 1조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시장의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린(친환경)분야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단기에 수익을 내기에 쉽지 않은 영역이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시장에서는 SK온이 흑자 전환에 실패하면서 자금이 필요해진 SK이노베이션이 조단위 유상증자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상증자를 발표한 SK와 CJ는 공통적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도 “최근 몇 년 간 누적된 SK의 투자실패와 계열사들의 실적 악화로 ‘SK 위기설’마저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