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장(사장)과 협력업체 KDFS의 황욱정 대표를 동시에 소환조사했다. 협력업체에 대한 물량 특혜 의혹에서 시작된 이번 수사는 KT 내부의 ‘이권 카르텔’에 기반한 비자금 사건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KT 본사의 사장급 인사까지 조사를 받게 되면서 의혹의 정점인 구현모 전 대표 조사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4일 박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 사장은 지난 3월 구 전 대표가 일신상 이유로 사퇴한 이후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그는 구 전 대표 체제에서 경영기획부문장과 안전보건 총괄대표이사를 겸임하며 ‘그룹 2인자’로 불렸다.
검찰은 박 사장에게 시설관리 일감 발주업체를 KT에스테이트에서 KT텔레캅으로 바꾼 경위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KT텔레캅은 구 전 대표가 취임한 2020년 KT에스테이트가 담당하던 시설관리 사업을 넘겨받았고, 이후 4개 협력업체에 나눠주던 물량을 KDFS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 사장은 이 과정을 보고받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앞서 KT텔레캅 임원 조사에서는 박 사장이 2021년 초 ‘일감 몰아주기는 구 전 대표와 이야기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KDFS에 물량을 몰아주라는 지시가 담긴 신현옥 KT 부사장과 KT텔레캅 임원 사이의 통화 녹취록도 확보했다고 한다. 녹취록에는 해당 임원이 “내용을 문서화해 다시 지시해 달라”고 하자 신 부사장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압박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KDFS 황 대표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KDFS는 KT 일감을 받은 협력업체로, 황 대표는 KDFS의 직원 규모와 수익 등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된 상태다. 검찰은 황 대표 자녀 2명이 KDFS에 허위로 고용돼 1억원대 연봉을 받았으며, 황 대표가 최근 월급 명목으로 거액을 인출하는 등 회삿돈을 빼돌린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대표는 지역본부를 순회하며 임직원들에게 수백만원의 수고비를 받았다는 거짓 사실확인서를 요구하는 등 비자금 의혹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도 받는다.
검찰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이 KT그룹 전직 경영진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신 부사장과 황 대표는 구 전 대표, 남중수 전 KT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퇴임한 남 전 대표는 최근까지 KDFS의 고문 자리에 아내 이름을 올려두고 수년간 고문료를 챙겼다는 의혹에도 휩싸인 상태다. 검찰은 관계자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 전 대표를 비롯한 전 경영진을 소환해 관여 여부를 규명할 방침이다.
임주언 박재현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