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받는 사업이 최근 7년간 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을 앞둔 해에는 면제 사업 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여야는 예타 대상 사업의 총사업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리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추진하다 총선용이라는 비판에 법안 처리를 연기한 상태다. 예타 면제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4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 기준 조정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예타 면제 사업의 총사업비는 2015년 1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17조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예타 면제 사업 수는 같은 기간 13개에서 26개로 증가했다. 예타 면제 사업은 총선을 앞두고 크게 증가했다. 2020년 21대 총선 전인 2019년 예타 면제 사업은 47개, 사업비는 36조원에 육박했다. 2020년에도 예타 면제 사업은 31개, 30조원에 달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1개 사업이 면제됐는데, 사업 규모는 518억원 수준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타 대상 사업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 사업 등이다. 예타 면제 사업 유형은 10가지 유형이 있는데, 모호한 기준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기준은 추상적 표현으로 만연한 예타 면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함에 따라’ 면제된 사업은 전체 면제 사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는 사업비 기준 92.6%가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함에 따라’ 면제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세진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재정경제팀장은 “예타 면제 사업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 스스로 예타 제도 자체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흐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하고, 면제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확대했다.
하지만 예타 면제 기준을 완화하려는 입법 시도는 여전한 상황이다. 여야는 지난 4월 예타 면제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총선용이라는 비판에 법안 처리를 연기했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은 1999년에 도입된 만큼 현재의 국가 경제 규모와 재정 규모의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총사업비 기준을 1000억원으로 올리면 그만큼 경제성이 부족한 재정 사업이 우후죽순 생겨 심각한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타 면제 기준을 사업비로 규정하지 않고, 예산이나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로 정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며 “동시에 예타 면제 기준을 객관적 지표로 명확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