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 사망한 이훈구 전도사, 의학 발전 위해 시신 기증… 아내는 26년 전 신장 기증… 부창부수 거룩한 생명나눔

입력 2023-07-04 03:03
생전의 이훈구(가운데) 전도사가 아내 최연화(오른쪽)씨와 딸 이수산나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소외된 아이들 70명을 키워낸 부부는 마지막 자신의 몸까지도 이웃을 위해 내놨다. 고 이훈구 전도사와 최연화(70) 부부 이야기다.

이들 부부는 1995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맡아 돌보기 시작했다. 본인 자녀도 있지만 위탁 아동들을 계속 받으면서 경기도 안성에서 아동양육시설을 운영했다. 이 전도사는 생전 백합그룹홈을, 아내 최씨는 수산나네집 원장을 맡는 등 일평생 소외당하는 아이들의 울타리가 돼줬다.

특히 이 전도사는 은퇴 후에도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산책을 즐길 정도로 정이 많았다. 부부는 정년 이후 최근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했고, 캄보디아에 직접 세운 기독학교의 운영비를 매달 감당했다. 부부가 그동안 걸어온 인생은 ‘생명 구원’ 그 자체였다.

이 전도사가 경기도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는 지적장애 아동과 함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하지만 이 전도사는 지난달 25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여러 암과의 사투에서 꿋꿋이 이겨냈지만, 지난해 재발한 암을 치료하던 중 폐렴 증상이 악화돼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을 거뒀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 전도사가 내린 선택은 시신 기증이었다. 이 전도사 가족들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를 통해 시신 기증을 결정했다. 그의 시신은 지난달 27일 발인 후 경희대 의과대학에 인도됐다.

이 전도사의 아내 최씨는 “장례식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닌 천국에 입성한 남편을 축복하는 환송식”이라며 “발인 이후 절차가 없으니 오히려 남편을 깊이 추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됐다”고 고백했다.

주변에선 이 전도사를 천사로 기억했다. 고인은 생전 안성제일장로교회(양신 목사)에 출석하며 신학을 공부했는데, 주중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에는 전도사로 사역했다. 교통비 한 푼 받지 않고 개척교회 사역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최씨는 26년 전 장기부전 환자를 위해 신장을 기증한 바 있다. 당시 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이가 남편 이 전도사였다. 고인은 오래전부터 생명나눔에 대한 뜻이 확고했다. 생전 가족들에게 “언젠가 한 줌 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갈 몸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세포 하나하나는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재료”라고 말했다.

박진탁 이사장은 3일 “생명나눔의 거룩한 의지를 보여주신 고인의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며 “고인의 숭고한 사랑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