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경찰수사연수원 ‘법곤충감정실’로 한 남성 변사자 A씨의 사망시점을 묻는 의뢰가 들어왔다. A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딸과 단둘이 지내다가 갑자기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문제는 A씨가 숨지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나서야 신고가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라 여러 정보가 유실된 상황이었다. 사망시점도 명확하게 알 방법이 없었다. 당시 딸은 아버지 사망시점을 ‘2주 전쯤’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술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미궁에 빠진 사망시점을 밝히는 데 열쇠가 된 건 ‘큰검정파리 구더기’였다. 법곤충감정의 시작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구더기의 과, 종부터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이다. 감정실 연구사들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구더기들을 ‘형태분석실’로 보내 검정파리과라는 사실을 파악했고, DNA 분석을 거쳐 큰검정파리 종임을 확인했다. 이어 사건 현장 온도와 구더기 무리의 온도 등이 포함된 현장 기록지를 토대로 구더기 생장을 역추적해 A씨의 사망시점을 2주 전으로 특정했다. 딸의 진술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지난달 26일 충남 아산의 법곤충감정실에서 만난 오대건, 이현주 보건연구사는 인터뷰 당일도 곤충 감정으로 분주했다. 법곤충감정실은 지난해 5월 17일 개소한 이래 지난해에만 총 140건의 감정을 완료했다. 상당수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 모르는 고독사 시신이라고 한다. 오 연구사는 “사회 시스템상 고립되는 약자가 많이 생기고 있다. 사망 시간을 추정해서 유가족들에게 사망에 대한 궁금증을 과학적으로 알려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 연구사에 따르면 사망 이후 3일이 넘어가면 부패가 진행된다. 부패와 동시에 시신에 남아 있는 의료정보가 소실되기 시작한다. 오 연구사는 “곤충은 시신이 놓이면 몇 시간 이내에 와서 알을 낳는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곤충은 중요한 사망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키’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시신 내 곤충의 성장 속도는 현장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구더기의 경우 알에서 부화한 후 단계별로 1령, 2령, 3령 순으로 나이를 먹는데 온도 등 환경에 따라 성충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백 시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 연구사는 “현장 환경을 면밀하게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 현장에서도 이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두 연구사는 법곤충감정이 죽음과 관련된 의문을 해소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에 따라 사망 위치도 알아낼 수 있다. 실내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실외종 곤충이 발견될 경우 시신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추정하는 식이다. 설비가 갖춰지면 약독물 감정도 가능하다고 오 연구사가 설명했다.
법곤충감정 분야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교육 신청 인원이 꽉 차는가 하면, 재교육생도 생겼다. 이 연구사는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제대로 잘 적용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다시 듣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패한 시신만으로는 변사자의 사망 시점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사망 추정 시점에 있는 주변 CCTV 등을 다 살펴봐야 한다”며 “법곤충감정으로 최소한 어느 시점에서 사망했다고 감정을 내면 그만큼 범위를 좁힐 수 있으니 수사력을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산=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