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동물병원의 분점을 운영하는 수의사 A씨(45)는 2020년 3월 19일 반려견 디스크 수술 문의를 위해 병원을 찾은 B씨와 상담했다. B씨 반려견은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 뒤 퇴원했으나 뒷다리에 마비 증상이 발생했다. B씨가 항의하면서 의료분쟁으로 비화됐다. 그 와중에 B씨 남편의 개인정보가 새어나가면서 A씨는 형사법정에까지 서게 됐다. 1심과 2심서 유무죄가 엇갈리는 등 치열했던 재판은 2년이 지나서야 대법원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사건은 상담 과정에서 비롯됐다. 상담 도중 B씨는 남편에게 연락해 반려견이 다른 병원에서 찍은 MRI 촬영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B씨 남편은 병원 카카오톡 계정으로 자료를 보냈다. 당시 B씨 남편 프로필에는 그가 운영하는 의류업체 정보가 나와 있었다.
B씨는 소셜미디어에 수술에 대한 항의와 병원 비방글을 계속해 올렸다. 이에 A씨는 B씨 남편 카카오톡 계정에 적힌 프로필명과 의류업체를 검색해 B씨 남편의 실명을 파악했다. A씨는 그해 6월 15일 본원 원장 C씨 등과 모인 자리에서 C씨 부인도 의류업계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C씨에게 “부인을 통해 중재에 나서 달라”며 B씨 남편 실명을 알려줬다. B씨 남편과 친분 있는 사람을 물색해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였다. B씨 부부는 이후 한 지인에게 C씨 부인이 자신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검찰은 A씨가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C씨에게 함부로 누설했다고 보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에선 무죄가 나왔다. A씨의 분원과 C씨가 운영하는 본원을 같은 업체라고 봤다. 두 사람이 손실 공동책임 등을 규정한 동업계약서를 쓰고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공동 대처 차원에서 B씨 남편 정보를 공유했다고 보고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에게 벌금 5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도 C씨가 A씨와 마찬가지로 비방글에 공동 대처할 의료분쟁의 당사자라고 봤지만, B씨 남편 실명이 C씨를 거쳐 결국 그의 부인에게로 흘러간 점을 문제 삼아 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씨 부인은 A씨, C씨와 달리 B씨 남편의 개인정보를 취급할 지위에 있지 않다”며 “A씨는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C씨 부인에게 누설한 것이고, 그 고의도 인정된다”고 말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A씨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