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풀잎 하나가
옆에 있는 풀잎에게 말을 건다
뭐라 뭐라 말을 거니까
그 옆에 선 풀잎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풀잎이
또 앞에 선 풀잎의 몸을 건드리니까
또 그 앞에 선 풀잎의 몸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들끼리
한꺼번에 흔들린다
초록 풀잎 하나가
뭐라 뭐라 말 한 번 했을 뿐인데
한꺼번에 말이 번진다
들판의 풀잎들에게 말이 번져
들판은 모두
초록이 된다
-안도현 동시집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중
풀잎 하나의 움직임이 옆으로 번지며 들판이 모두 초록으로 변해가는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생생한 이미지에 시인이 심어놓은 메시지는 잡힐 듯 말 듯하다. "초록 풀잎이"라고 해도 됐을 텐데 "초록 풀잎 하나가"라고 쓰고, "말 했을 뿐인데" 대신 "말 한 번 했을 뿐인데"를 선택한 게 도드라진다. "하나"와 "한 번"이 가진 가능성을 펼쳐 보이면서 시작하는 용기를 격려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