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 관계에 있던 부하 직원이 자신의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7시간을 방치해 숨지게 만든 전직 국토연구원 부원장이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 부원장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내연 관계를 맺어 온 부하 직원 B씨와 2019년 8월 16일 저녁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오후 11시쯤 B씨가 돌연 구토를 하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A씨는 이후 3시간 동안 B씨 몸에 묻은 토사물을 씻어내고 화장실 앞 바닥에 눕혀놨을 뿐 어떠한 응급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후 B씨를 차량 뒷좌석에 실어 세종시 국토연구원 앞 공터로 이동한 후 오전 6시 무렵까지 시간을 흘려보냈다.
A씨는 오전 6시 30분이 돼서야 B씨를 인근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는 병원 관계자들에게 “어제 저녁까지 피해자와 연락을 했으나 아침에 연락했을 때 연락이 되지 않아 국토연 주차장에 가보니 B씨가 차 안에 쓰러져 있어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B씨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리자 A씨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오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사망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119에 신고하거나 병원에 데려가는 등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다. B씨가 자기 집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두 사람의 내연관계가 드러나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가족관계도 파탄을 맞을 것을 우려한 A씨가 고의로 B씨를 방치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뇌출혈 증상 직후 급격히 악화돼 사망 직전 상태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경우 이미 회복은 어렵다고 판단한 A씨가 구호조치를 하면 B씨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우선 재판부는 B씨 사망 시점을 오전 4~5시로 인정했다. 소생 가능성이 있던 상태에서 A씨가 즉각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B씨가 숨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회적 명예 실추와 가족관계 파탄 우려라는 범행 동기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할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이던 피고인은 119 신고 등 조치를 하지 않았고,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데도 별다른 주저함 없이 피해자를 짐짝 취급하며 차량 뒷좌석에 던져뒀다”고 질타했다.
또 “피해자는 오랜 기간 직업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신뢰했던 피고인에게서 절체절명의 순간 버림받아 어떠한 의료처치도 받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망했다”며 “미필적인 살해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보고 형을 확정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