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스웨덴 출산율 반등의 비결… ‘패밀리센터와 유보통합’

입력 2023-06-29 00:04
지난 13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유보통합 기관인 ‘부 고드’ 푀르 스콜라에서 아이들이 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스웨덴 공동취재단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아드알베르트 스트라세 패밀리센터에는 임신부부터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초보 엄마, 아이 손을 잡고 찾은 아빠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센터로 들어선 아이들은 익숙한 듯 부모 손을 놓고 실외 놀이터로 달려가 모래놀이를 하거나 육아방에 마련된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부모들은 예약해 둔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다른 부모들과 얘기를 나눴다. “아이가 도통 잠을 자지 않는다” “두드러기가 나는데 어떤 음식이 좋을지 모르겠다” 등 아이 상태와 관련한 고민부터 도시생활 얘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오갔다. 일종의 ‘육아 사랑방’이었다.

독일은 대표적인 저출산 극복 성공모델 국가로 꼽힌다. 2005년 합계출산율이 1.34명 수준이던 독일은 이후 지속적으로 출산율이 올라가 지난해 1.6명을 기록했다. 이 기간 한국의 출산율이 1.09명에서 세계 꼴찌 수준인 0.78명으로 곤두박질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독일 출산율 정책이 주효했던 데는 영유아 부모를 위해 다양한 육아 공간을 제공하고 적극적인 모성 보호·친가족 정책을 전개한 점이 꼽힌다.

아드알베르트 스트라세 패밀리센터는 약 800㎡로 베를린 내 가장 큰 시설이다. 매주 75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브란덴부르크주(州)가 민간 복지법인에 위탁해 운영한다. 소득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만 6세 이하 아동과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 요가·춤·요리·언어 등 75개 프로그램 중 30개는 유료이긴 하지만, 이용료는 1~3유로(약 1431~4293원) 정도로 부담이 적다.

한국의 육아종합지원센터 역할과 유사하지만, 패밀리센터는 육아로 지친 부모에게 ‘힐링 공간’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안야 마이 패밀리센터 책임자는 “부모들이 육아와 가사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이들과 ‘일상 속 작은 휴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베를린의 아드알베르트 스트라세 패밀리센터의 강점은 ‘교류’에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정서적 교류를 하고 전문가 상담을 통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얻는다. 이민자가 많은 독일 인구 특성상 패밀리센터 내 국가별 소모임도 있다. 실제로 이날 찾은 센터에서는 튀르키예에서 이주한 부모들이 모여 고국의 전통 음식을 먹으면서 모국어로 육아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독일 베를린의 아드알베르트 스트라세 패밀리센터를 방문한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센터를 찾은 부모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 센터는 일종의 ‘육아 사랑방’ 역할을 한다. 독일 공동취재단

전문가 상담 프로그램 진행 중에 가정 폭력이나 경제적 어려움이 발견되면 센터는 즉시 지방정부에 연계해 도움을 준다. 아예 연계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조직이 센터 내에 있다. 다른 곳으로 상담을 하러 가지 않고도, 센터 안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안야 마이 책임자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 사람들은 어린 시절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친한 사람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뿌리’가 없다”며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을 타인과 만나 대화하고, 전문가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모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육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스웨덴

합계출산율뿐 아니라 ‘아이 키우기 좋은 조건’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다. 북유럽 대표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8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일과 시간에도 거리에서 아이와 함께 다니는 ‘라테 파파(latte papa)’를 쉽게 볼 수 있다. ‘육아하는 아빠’를 뜻하는 이 말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페라테를 마시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육아에 있어 양성평등 인식이 강하다. 여기에 더해 여성이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택하지 않는 건, 보육 시설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부 고드’ 푀르 스콜라(취학 전 유아학교)에는 만 1세부터 6세 아이들이 한 반에 16명가량으로 구성돼 나이에 맞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날 찾은 만 3~4세 유아반 아이들은 “주사위 놀이를 하자”는 교사의 말에 너도나도 손을 들며 “내가 던지겠다”고 외쳤다. 주사위를 던져 ‘나무’ ‘공룡’ ‘파도’ ‘자전거’ 등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나오면 그에 어울리는 동요를 부르는 식이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교사 1인과 아이 지도를 돕는 보조교사 1인이 함께 수업을 이끌었다. 유보통합의 결과라고 한다.

스웨덴은 1996년 보건사회부에서 보육·육아를 담당하는 업무를 전부 교육부로 이관해 유보통합을 완료했다. 현재 한국 정부도 2025년을 목표로 유치원(교육부)과 어린이집(보건복지부) 과정을 합하는 유보통합을 추진 중이다. 아이들의 학습 격차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푀르 스콜라는 부모가 일하거나 학업 중이면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방 정부(코뮨)에 따라 기준이 다르지만, 부 고드 푀르 스콜라가 위치한 나카(Nacka) 코뮨에서는 주 25시간 무상 보육을 지원한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라는 것이다. 엘리자베트 발스트룀 교장은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의 집이 2개라는 인식이 있다”며 “사는 집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는 장소 역시 100% 집과 같은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28년 국가의 역할을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으로 규정했던 페르 알빈 한손 총리의 ‘국민의 집’ 이념과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스웨덴 복지의 핵심이기도 하다.

부 고드 푀르 스콜라는 5시30분에 문을 닫는다. 운영 권고 시간은 6시30분까지지만, 스웨덴에서는 대부분 시설이 5시 이전에 하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기에 빠듯하지 않냐고 묻자 발스트룀 교장은 “스웨덴에는 맞지 않는 질문”이라며 웃었다. 이어 “스웨덴에서는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일찍 근무를 마치는 ‘플렉서블 타임(유연 근무)’이 있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 갑자기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서비스도 코뮨에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 스톡홀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