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 4000여장을 별다른 진찰도 없이 한 명의 환자에게 마구잡이 처방한 의사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국내에서 의료용 마약을 불법 처방한 의사가 구속 기소된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팀장 신준호 강력범죄수사부장)은 27일 모두 304차례에 걸쳐 펜타닐 패치 4826장 처방전을 김모(30)씨에게 발급해준 가정의학과 의사 신모(59)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의사 임모(42)씨는 김씨에게 패치 686장 처방전을 발급해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2020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16개 병원을 돌며 패치 7655장을 처방받아 사들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신씨는 “허리 디스크가 있다”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아 왔다” 등의 김씨 말만 듣고 처방전을 내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신씨가 대기실에 있던 김씨에게 별다른 진료 없이 처방전을 발급해 주는 장면이 담겼다. 김씨는 약국에서 허리를 숙이고 손을 무릎에 댄 채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패치를 받아 떠났다. 그는 하루 최대 펜타닐 패치 10장을 태워 연기를 흡입했고, 타인에게 팔기도 했다. 그는 장당 약 1만5000원에 구입한 패치 120여장을 장당 10만원에 판매했다가 지난해 7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 검찰은 “신씨가 처방한 펜타닐 패치 4826장은 4만538명의 치사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은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 진정 효과가 있어 말기 암 환자 등에게 주로 사용된다. 중독된 사람이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미국 내에서 목격돼 ‘좀비 마약’으로도 불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7년 2만8466명이었던 펜타닐 중독 사망자 수가 2021년 7만601명으로 급증했다.
한국 역시 2020년 6명, 2021년 13명, 2022년 7명으로 펜타닐 중독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패치 형태 의약품으로 유통돼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거부감이 적어 청소년층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2021년 6월 경기도의 한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서 19세 미성년자가 펜타닐 급성중독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검찰 수사 결과 최근 3년간 펜타닐 처방 상위 42개 병원의 1인당 평균 처방 장수는 2020년 156장, 2021년 198장, 2022년 153장이었다. 1인당 처방권고량 연간 120장(3일에 1장)을 웃도는 수치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