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개통하면 100만원” 꼬드김… 신분증 맡기니 할부금·소액결제 폭탄

입력 2023-06-28 04:07 수정 2023-06-28 04:07

올해 초 보육원에서 자립한 A씨는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돈 빌릴 곳을 찾다 ‘내구제대출’을 알게 됐다. 내구제대출은 사채업계에서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인 ‘휴대전화 깡’이다. A씨에게 접촉한 사채업자는 “휴대전화 2대를 개통해 건네주면 현금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A씨는 “휴대전화 할부금과 통신료는 낼 필요 없다. 소득이나 직업이 없어도 개통이 가능하다”는 사채업자의 말에 신분증을 건넸다. 그러나 3개월 뒤 A씨는 이동통신사로부터 “밀린 휴대전화 할부금과 통신료, 소액 결제 대금 700만원을 납부하라”는 독촉 전화를 받았다. 이로부터 한 달 뒤에는 “대포폰을 개통해 범죄 조직에 전달한 혐의가 있으니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경찰 연락도 받았다. A씨는 결국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돼 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급전이 필요해 불법 사채에 손을 대는 청년은 대부분 내구제대출도 함께 쓴다. 일부 사채업자는 “내구제대출을 함께 쓰면 대출 한도를 늘려주겠다”는 ‘꺾기’ 식 영업도 한다.

내구제대출을 막을 방도는 있다. 그러나 통신사는 내 탓이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다. 업무상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써야 한다 하더라도 특정 고객이 단기간 내에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것은 비정상적인데도 통신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런 개입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배경에는 SGI서울보증보험이 제공하는 1인당 600만원의 휴대전화 후불 개통 보증이 있다. A씨와 같은 피해 사례가 발생해 통신료 등을 받지 못하더라도 600만원까지는 SGI서울보증이 대신 통신사에 갚아준다. 수익 내기에 급급한 통신사는 SGI서울보증만 믿고 누가 휴대전화를 몇 대를 개통하든 지켜만 보고 있는 셈이다.


내구제대출 피해를 키우는 소액 결제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신용 불량자가 되지 않는 한 휴대전화만 있으면 한 달에 100만원의 소액 결제 한도가 생긴다. 첫 달에 100만원을 다 쓴 뒤 이를 갚지 못해도 그다음 달 100만원의 한도가 새롭게 부여된다. 연체가 이어져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까지 매월 100만원씩 소액 결제액이 누적되는 피해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A씨의 경우에도 피해액 700만원 중 절반 이상이 소액 결제액이었다.

전문가는 청년층의 내구제대출 피해를 막으려면 통신사와 SGI서울보증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 사채 피해자를 돕는 주세연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장은 “하루빨리 1인당 휴대전화 개통 대수와 소액 결제 한도에 제한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통신업계 관계자는 “약관상 휴대전화 개통은 1인당 3대까지만 가능하고 3회선 초과 개통 시 개인 신용도를 엄격히 따지고 있다. 소액 결제의 경우에도 신규 개통한 휴대전화는 3개월간 매월 15만원의 한도를 둔다. 통신사가 청년층의 내구제대출 피해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은 오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욱 신재희 임송수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