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향한 길 곳곳이 난관인데… ‘신재생 카르텔’까지 발목

입력 2023-06-28 04:05
RES 홈페이지에 게시된 RES 풍력발전. 한화솔루션 제공

전력 수급 불안정과 빈번한 출력제어, 각종 비리 사태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대신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원전 육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다만 ‘RE100’을 필두로 한 재생에너지 확대가 세계적인 규범으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에너지 분산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SS 화재 폭증…출력제어도 ‘빈번’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매스(생물 연료) 등으로 구성되는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 구축이 필수다. 재생에너지 강화 정책을 편 문재인정부는 ESS 보급에 공을 들였고, 지난 1월 기준 ESS 국내 설비 규모는 전국 2784곳에 달한다.

하지만 ESS를 늘리면서 ‘화재’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해 ESS 화재는 총 9건 발생했다. 이에 따른 재산 피해액은 448억원에 달했다. ESS는 설비 특성 상 건물 내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화재 발생 시 진화 차량이 ESS 내부로 진입하기 어렵고, 건물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단점이 있다.

재생에너지원의 빈번한 출력제어도 골칫거리다. 출력제어는 전력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넘어서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블랙 아웃(대규모 정전) 상황을 막기 위해 발전소를 잠시 멈추는 것을 뜻한다.

특히 출력제어는 제주도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제주지역 전력 수요 100%를 대체하는 ‘탄소 없는 섬’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 결과 제주도 내 태양광발전소 전체 설비용량은 2012년 2.8㎿에서 지난해 2월 기준 491.8㎿로 폭증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면서 전력 소비량이 낮은 봄과 가을에 공급과잉에 따른 잉여 에너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제주도에선 끄고 켜기 어려운 화력발전이 아닌 신재생에너지 시설에 대해 강제로 발전을 중단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제주도의 출력제어 건수는 2019년 46회에서 지난해 132회로 증가했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정부에 출력제어로 입은 손실을 보상하라며 집단 행동에 나섰다.

전기 운반 비용 수조원…비리까지 터져

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를 운반할 송·배전 인프라 구축도 과제로 꼽힌다. 한국전력의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2022~2036년)’에 따르면 배전 설비 투자 규모는 31조 원으로 추산된다. 2년 전 9차 계획 당시 투자 규모(18조원)와 비교해 비용이 약 72% 늘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확대 여파가 크다. 날씨 영향이 큰 태양광·풍력 발전 등은 별도의 백업용 배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관련 비리도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13일 문재인정부 당시 태양광·풍력발전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비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산업부 전·현직 공무원 등 38명이 수사 대상으로 지목됐다. 전임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육성하는 과정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이권 나눠먹기가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RE100은 세계적 흐름… 보완책 시급

이런 문제점이 도출되자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속도조절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1월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RPS)을 14.5%에서 13.0%로 하향 조정했다. RPS는 발전사업자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총 발전량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의 전기를 생산하도록 한 제도다.

아울러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주요 발전원별 발전량 비중을 원전 32.4%, 석탄 19.7%, 액화천연가스(LNG) 22.9%, 신재생에너지 21.6% 등으로 조정했다. 문재인정부가 2021년 발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전량 비중과 비교하면 신재생에너지 비중(30.2%)이 8.6% 포인트 가량 낮아졌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기조는 글로벌 트렌드와는 차이가 있다. RE100이 좋은 예다. RE100은 가입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하는 캠페인이다. 가입은 자발적이지만 영향력이 작지 않다. 실제로 애플이나 테슬라는 RE100 가입 기업의 제품만 구매하겠다며 협력사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국내 산업계 전반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조화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난립한 태양광·풍력 사업 등을 일부 정리할 것”이라며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육성 흐름에 발맞추되, 자체 경쟁력을 키우고 전력 계통을 확충할 만한 정책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