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큰 나무 같은 사람, 김종철

입력 2023-06-28 04:06

지난 주말 조계사에 다녀왔다. 녹색평론 발행인이셨던 고(故) 김종철 선생 3주기 추모회가 열려서다. 선생의 글을 낭독하고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1991년 말 창간한 이 잡지를 만난 건 92년 생태학 수업에서였다. 조림학을 전공했으나 도시생태학이란 길을 개척한 교수님은 경제 발전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사회에서 잠시 멈춰 돌아보자 외치는 이 절실한 잡지의 창간을 들뜬 목소리로 알렸다. 이후 잡지는 내 왼쪽 날개가 돼 삶의 균형추를 맞췄다. 생태주의 잡지라 여기지만 실상 기후위기를 필두로 기본소득, 이자율, 지역화폐, 숙의 민주주의, 화석연료, 핵, 소농, GMO, 치료용 대마, 생물다양성 등에 대한 논리적·구체적 대안을 오롯이 제시해 왔다.

‘내 삶에서 뜻있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의 채근으로 친구들과 학교 근처 개천 옆에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었던 일이다. 나중에 고향 근처를 지나며 크고 그늘 짙은 나무들이 되어 있음을 보곤 했다’는 선생의 글이 낭독될 때, 아마 포플러였을 그 큰 나무들이 눈에 선했다. ‘그 나무들은 땅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우리의 존재의 근거를 환기시켜준다. 또 한 그루의 큰 나무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체를 그 품에서 기르고 보살핀다. (중략) 그러한 나무를 지키고, 섬기는 일보다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마지막 대담에서 이문재 시인은 선생을 큰 나무라 칭했다. 큰 나무는 서로 어깨를 걸어 깊은 숲을 만든다. 어떤 큰 나무도 홀로 숲을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그 그늘 아래 뭇 생명들이 자란다. 큰 나무가 스러지면 그 아래 보호받던 어린나무들이 몸을 키워 자리를 대신한다. 이것이 숲의 법칙이다. 법칙이 무너지면 숲도 무너질 터. 3년이면 탈상이니 선생의 부재를 슬퍼하기보다 우리 각자의 역할을 톺아봐야 할 때다. 다만 여름이 깊어지니 큰 나무의 그늘이 한결 더 그립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