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서 생활하던 A군(당시 12세)은 2019년 자신의 주민등록번호가 이미 3~4년 전에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됐다. A군의 법적 아버지가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내면서였다.
A군은 어머니가 외도로 낳은 아이였는데, 어머니는 이 사실을 숨긴 채 남편 자녀로 출생신고를 했다. 뒤늦게 이를 안 남편은 이혼 후 소송을 냈고, 법원이 친자관계가 아니라고 확인하면서 A군의 가족관계등록부가 폐쇄됐다. 출생신고를 다시 해야 했지만 어머니는 A군을 시설에 맡긴 뒤 연락이 끊겼다. A군은 한참 지나서야 어머니와 연락이 닿아 다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 ‘그림자 아이’로 지내야 했다.
A군처럼 가족관계등록법상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미등록 아동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때까지 법적 사각지대에 놓이는 실정이다.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출생 미등록 상태로 보호시설에 입소한 아동은 269명에 달했다. 이 중 40명은 입소 후에도 여전히 미등록 상태였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김희진 변호사는 “출생 미등록 아이 중에는 미혼부모나 혼인외출생 등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한계 때문에 진실한 출생 등록이 불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가 태어난 즉시 부모 정보가 온전히 기록될 수 있게끔 국가가 지원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국적 아동 역시 법 테두리 밖에 놓여 있다. 현행법상 부모가 외국인인 경우 자녀 출생신고 의무가 없다. 이번 감사원 조사대상에서도 병원에서 신생아 임시번호는 발급됐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전체 6000여명 가운데 외국 국적 아동 4000여명은 제외됐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의 경우 출생신고까지 평균 2~3개월 걸리고, 친생부모 출생신고나 가족관계등록 창설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는 1년 이상 소요된다. 그사이 아이들은 행정적으로 없는 존재다 보니 필수 의료서비스나 아동수당 등 국가지원에 제한을 받는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사회가 아이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아이가)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며 “출생신고라는 시작점이 없는 아이들은 우연히 발견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출생신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