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SNS는 악덕 사채업자 놀이터

입력 2023-06-27 04:09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디지털 시대 불법 사채업자들 수법이 기술 발전에 발맞춰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하던 과거와 달리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네이버, ‘토스’ 등 최신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악용한다. 이들은 IT 서비스의 익명성 뒤에 숨어 세력을 키우고 있지만 경찰 등 공권력의 대응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불법 사채업자는 첫 접촉부터 채권 추심까지 채무자와 대면하지 않는다. 채무자와 첫 연락은 카톡 익명 서비스인 ‘오픈 채팅’ 프로필이나 텔레그램 계정을 이용한다. 이 경우 일반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는 것보다 돈 빌려준 사람을 추적하기가 기술적으로 까다로워진다. 불법 사채가 대부분 건당 100만원 이내의 소액이라 채권 추심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면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접촉한 대출 희망자가 돈을 빌리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 “네이버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라”고 요구한다. 네이버 앱에 탑재된 주소록 기능을 이용해 채무자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있는 지인 연락처를 넘겨받기 위해서다. 네이버 앱을 이용하면 최대 2만개의 연락처를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파일 공유 앱을 설치하라고 하는 때도 있다. 사진첩에서 채무자 얼굴이 나오거나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얻기 위한 수법이다.

여기에 ‘돈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추심하더라도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친필로 쓴 뒤 얼굴 옆에 두고 ‘셀카’를 찍어 보내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채무자에게 살인적인 고금리를 매긴 이자를 받을 때는 토스를 이용한다. 채무자가 토스 앱에서 ‘ATM(현금자동입출금기) 현금 찾기’ 버튼을 누르고 출력되는 6자리 승인번호를 알려주면 불법 사채업자가 전국 지하철, 편의점 ATM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돈을 빼갈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채무자 토스 계정에 기반을 둔 가상계좌를 이용하므로 불법 사채업자가 대포통장을 쓸 필요도 없다.

디지털 시대 불법 사채업자의 채권 추심 수법은 과거 일수꾼보다 훨씬 악랄하고 집요하다. 주로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일수꾼은 얼굴을 보고 돈을 주고받는 특성상 “제때 갚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일삼거나 알몸 사진을 요구하는 등 도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불법 사채업자는 비대면으로 거래를 이어가는 탓에 이처럼 ‘막 나가는’ 성향이 더 강하다.

그러나 일부 일선 경찰서에서는 아직도 “불법 사채업자 이름과 연락처, 계좌번호를 가져오라”는 구시대적 수사 방식을 고집하는 등 뒤처진 대응을 하는 실정이다.

구제 기관 주빌리은행의 유순덕 이사는 26일 “찾아오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지만 아무런 권한이 없는 민간단체 소속으로서 거친 불법 사채업자를 상대하기가 가끔은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경찰이 불법 사채업자의 최근 수법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신재희 임송수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