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이 26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습실에서 지휘하는 로봇 ‘에버(EveR)6’를 언론에 미리 공개했다. 지휘봉을 든 에버6는 이날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빠른 박자의 곡인 ‘말발굽 소리’를 정확히 지휘했다.
에버6의 동작은 그동안 인간 지휘자의 지휘봉 궤적을 ‘모션 캡처’(몸에 센서를 달아 인체 움직임을 디지털로 옮기는 것)하고 운동 속도를 기록한 뒤 그 속도를 로봇이 구현하는 기술 등을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 에버6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만들었다.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에버6는 프로그램된 대로 시연하는 로봇이다. 공연 전에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짜인 대로 동작을 하게 된다”면서 “앞으로 데이터 학습 등을 통해 지휘자가 원하는 보조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버6는 어깨, 팔꿈치, 손목 등 관절을 구부릴 수 있는 만큼 지휘하는 모습 자체는 그럴듯하다. 다만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챗GPT 등 생성형 AI(인공지능)이 탑재되지 않은 만큼 역할이 단순하다.
최수열 지휘자는 “에버6는 지휘를 하지만 듣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며 “지휘자의 역할은 리허설에 참여해 악단의 소리를 듣고 교정, 설득, 제안하는 것은 물론 악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에버6는 이런 것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버6의 지휘 퍼포먼스가 꽤 섬세해서 놀라긴 했다. 하지만 아직은 기술이 지휘자의 예술적 영역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에버6로 오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현악시리즈Ⅳ ‘부재’(不在)를 통해 국내 최초로 로봇이 지휘하는 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에는 에버6와 함께 지휘자 최수열이 올라 각각 지휘하거나 함께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로봇 지휘자가 등장하는 공연은 그동안 해외에서 여러 차례 진행됐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앞서 2008년 일본의 아시모(Asimo), 2017년 스위스의 유미(Yumi), 2018년 일본의 ‘알터2’와 2020년 ‘알터3’ 등이 무대에 선 바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