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검색하니 대부업체 주르륵… “불법 알았다면 돈 안 빌려”

입력 2023-06-27 04:06
국민일보DB

불법 사채 피해자 A씨가 미등록(불법) 대부업체를 접하게 된 것은 포털 검색을 통해서였다. ‘무직자 대출’ ‘긴급 대출’ 등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했더니 수백개의 대부업체 사이트가 떴다. 포털에 당당히 이름을 걸고 광고하는 곳은 당연히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불법 업체인 줄 알았다면 돈 10원도 안 빌렸을 것”이라며 “부주의한 내 탓도 있지만, 개인적인 상황이 급해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금융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포털·SNS 광고 자체를 차단할 방안부터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단속·처벌 강화 등 공급자에 대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를 이용하게 된 통로 등 수요자 측면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불법 사채를 이용하는 금융 소비자는 대부분 포털이나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상에 게재된 광고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26일 대부금융협회가 2020년 발간한 60건의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 사례 중 27건(45%)은 대출중개사이트를 이용한 사례였다. 대형 포털과 SNS가 금융 소비자를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모는 ‘창구’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정작 포털에서 긴급 대출 관련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정부에서 시행 중인 최저 신용자 특례보증이나 소액생계비대출 등 정책서민금융상품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운영하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사이트도 따로 검색해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접근이 쉽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정부를 사칭한 위장 광고로 금융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광고 화면에 ‘특별 생계지원’ ‘정부 지원’ 등 문구를 넣고, 태극 문양이나 ‘힘내라 대한민국’ 로고를 삽입해 교묘하게 소비자를 속이는 형태다. 해당 링크를 클릭하면 대부업체 페이지로 바로 연결된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불법 광고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불법 미등록 대부업자 31개사를 적발했는데, 당시 금감원은 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전화번호 이용 중지 및 게시 동영상 삭제를 요청하는 것에 그쳤다. 현재 불법 대부 광고에 사용된 번호를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은 과기부 장관과 서민금융진흥원장뿐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수사 당국에 수사 의뢰를 해도 증거 확보가 어려워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미등록 대부업자들은 대부분 대포폰·대포통장으로 영업하기 때문이다. 결국 불법 사금융 관련 관리·감독 권한과 수사 권한이 여러 곳에 분산돼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포털·SNS 등 온라인 매체에 대출 키워드 검색 시 연결되는 사이트에 대해 최소한의 적법성 및 적합성을 확인하도록 강제하거나, 대부중개사이트의 영업 행위를 단순 광고가 아닌 중개 행위로 규율하기 위한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재희 김진욱 임송수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