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벽 높이고 보조금 더하고… 전기차 공급망 파워게임 치열

입력 2023-06-27 04:08

전기차·배터리 산업이 국가 미래 전략산업으로 떠오르면서 패권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공급망 주도권 잡기’가 핵심이다. 각국 정부는 법안, 대규모 자금 지원을 앞세워 자국 내 투자·생산을 유도한다. 전기차 전환 흐름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도 추격전에 뛰어들었다. 한국도 전기차·배터리 업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최근 핵심원자재법(CRMA)에 알루미늄을 ‘핵심 원자재’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초안이 나온 이 법안은 배터리·친환경 에너지 설비에 들어가는 광물의 채굴·제련·재활용 등을 EU 권역 안에서 일정 비율 이상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주요 광물 공급망을 EU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는 구상이다.

알루미늄은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담당한다. EU에선 알루미늄을 핵심 원자재로 지정해 연간 소비량의 40%를 EU 권역 내에서 가공하고, 재활용 비율을 1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독일을 비롯해 각종 무역단체에서 알루미늄을 핵심 원자재로 등재하자는 요구가 높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SK온과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에서 추진하고 있는 미국 배터리 공장 건설에 약 92억 달러(12조원)의 정책자금 대출을 잠정 결정했다. 미국이 자국 내 자동차·부품 산업 육성을 위해 진행하는 첨단기술차량제조(ATVM)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도 지난해 25억 달러(3조3000억원)의 ATVM 대출을 확보했었다.

일본도 추격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토요타의 전기차용 배터리 투자에 1200억엔(1조95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4월에도 혼다의 배터리 투자계획에 1600억엔(약 1조4600억원)에 이르는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배터리 제조기반을 확대하고 공급망 위험을 낮추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도 배터리·소재 산업을 향후 5년간 5대 수출 품목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27년까지 배터리 관련 기술 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30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다만 산업계에선 경쟁국과 비교해 지원 규모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22일 한국무역협회 주재로 열린 ‘수출 확대를 위한 산업계 릴레이 간담회’에 참석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재 지원 수준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전기차의 경우 글로벌 원가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정만기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연구·개발(R&D) 세액공제와 더불어 시설 투자, 생산에도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의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고 26일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