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채 조직이 활개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잡힐 가능성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와 비인간적 추심에 지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수사의 기본 정보가 되는 불법 사채업자의 연락처, 계좌번호가 또 다른 피해자 명의로 된 탓에 추적이 쉽지 않다.
2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한 불법사금융 피해자 A씨는 매 순간 오르는 이자와 밤낮없이 울리는 추심 카카오톡 알림에 지쳐 지난 4월 중순 불법 사채업자 B씨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담당 경찰관은 A씨가 제출한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번호와 계좌가 도용된 명의로 개설됐다는 점에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B씨의 위치를 파악하더라도 영장 없이는 잡을 수 없고, 거래가 비대면으로 이뤄진 탓에 용의자를 특정하기도 어렵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게다가 힘들게 B씨를 찾아내더라도 그가 A씨의 정보를 폐기했다면 범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다.
불법사금융 조직은 이 같은 약점을 파고들어 피해자를 범죄의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A씨가 살인적인 이자율에 허덕이다 못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B씨는 추가 대출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A씨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A씨는 “보이스피싱에 연루되는 것이라면 못하겠다”고 거절했지만 B씨는 “지금 당신도 모르는 사람 계좌에 돈(대출상환액)을 넣고 있지 않으냐”며 “이것부터 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A씨는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통장을 개설하고 퀵 기사를 통해 통장과 카드를 넘겨줘야 했다.
그러자 A씨는 어느 순간 범죄자로 둔갑했다. A씨가 빚을 모두 청산하자 B씨는 도리어 A씨가 대포통장을 개설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위를 소명해야 했다.
이와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조직적 범행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강원경찰청은 연 5000% 이상의 고금리를 받아 챙기는 등 불법사금융 범죄 조직을 운영하거나 범죄에 가담한 123명을 검거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활동했는데, 대포폰과 대포통장, 대포차량을 활용하며 조직원들 간 대면도 하지 않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여기서도 대출 피해자들은 범죄자가 됐다. 조직원들이 사용한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채무를 없애주겠다’며 피해자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실제로 검거된 123명 중 45명은 범죄에 쓰인 통장 계좌 등을 제공한 사불법 사채 피해자들이었다.
임송수 김진욱 신재희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