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급전’ 악몽… 알몸사진 담보로 이자는 원금 35배

입력 2023-06-26 00:03

A씨(36)가 처음 사채에 손을 댄 것은 단지 급했고, 또 간편했기 때문이었다. 큰 고민은 없었다. 이혼한 뒤 전 남편과 함께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초기 자본이 필요했다. A씨는 25일 “불법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며 “네이버에 ‘대출’을 검색했더니 여러 사이트가 떴고, 그중 한곳에 글을 남겼더니 네 곳에서 곧바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A씨는 “네이버에서 광고하니 당연히 합법적인 곳이겠거니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해 10월 미등록(불법) 대부업체 네 곳에서 돈을 빌렸다. 이들은 모두 30만원을 빌리고 1주일 뒤 50만원을 갚는 방식을 제안했다. 연 이자율로 따지면 3000%가 넘었다.

연체 없이 돈을 갚아가던 A씨에게 솔깃한 제안이 왔다. 한 업체가 추가로 한번에 100만원을 빌려주겠다며, 딱 한자리만 남았다고 했다. 선이자로 30만원을 내고, 원금은 1주일에 10만원씩 갚으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기적인 채무관계를 유도한 것이었다.

A씨는 연말에 돈이 들어갈 일이 많아지자 제안을 수락했다. 업체는 담보로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 A씨는 당연히 망설였다. 사채업자는 “이상한 데 안 쓴다. 지금까지 관계가 있는데 나를 못 믿느냐. 다들 이렇게 한다”며 다른 여자의 나체 사진을 예시로 보냈다.

고민 끝에 A씨는 그들의 요구대로 전신·상반신·하반신을 찍어 보냈다. 사진을 보내자 태도가 강압적으로 돌변했다. 2주 뒤에는 “지침이 바뀌어 매주 사진을 보내야 한다”며 점점 더 수위 높은 사진을 요구했다. A씨는 “계속 욕설·협박을 듣다 보니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였고, 사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자 납부가 밀리면서 발생했다. 처음 돈을 빌린 지 약 넉 달째였다. A씨가 “돈이 너무 없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니 바로 심한 욕설이 날아오더니 “30분 안에 모든 사진이 퍼질 것”이라는 협박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맛보기’라며 지인 10명에게 가장 낮은 수위의 사진을 전송했다. 나중에는 휴대전화 주소록, SNS 400여명의 친구에게 메시지(DM)를 통해서 사진을 유포했다. 사업 거래처부터 친구, 친척까지 모두 사진을 받아봤다. SNS에 실명으로 태그된 사진도 올렸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뒤 A씨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과 함께 그간 있었던 일을 경찰에 신고했다. 4개월간 이자로 낸 돈만 1300만원이 넘었다.

성적인 추심이 아니더라도 지인을 ‘볼모’로 협박하고, 사실상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게 최근 불법 대부업체의 채권 추심 수법이다. 이를 위해 미등록 대부업체는 첫 대출을 해줄 때 담보 명목으로 가족·지인 연락처를 요구한다.

B씨(34) 사례도 비슷하다. 이자를 제때 갚지 않자 미등록 대부업체가 B씨 지인들을 초대한 단체 채팅방을 만든 뒤 “지인 개인정보 팔아가며 사채 쓰고, 갚으라니까 돈 없다고 한다. B씨가 제3자에게 동의받지 않고 개인정보 유출했으니 고소해도 된다”고 말했다.

신재희 김진욱 임송수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