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보면 뭔가 색다른 느낌의 교회를 만날 수 있다. 개척한 지 2년밖에 안 된 ‘희망의교회’(정희성 목사)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예배당 규모는 왜소했지만 기존에 봐왔던 교회 모습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대학교의 작은 콘서트 홀이나 카페처럼 보였다.
이달 초 방문한 교회에선 정희성 목사와 일부 성도들이 모여 진지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하반기 주요 사역이었다. 적지 않은 사역 내용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기후 길라잡이’였다.
지구 환경의 핵심이 되는 기후 문제를 중심에 놓고 앞으로의 사역 방향을 논의하는 모습이 얼핏 보기엔 잘 와닿지 않았다. 지금껏 교회에서 이러한 활동을 한 경우를 좀처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목사와 성도들은 큰 사명감을 갖고 구체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6년 전부터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가져온 정 목사는 지난해 기후위기 시민 활동가 교육을 이수했다. 이후 시민단체 ‘의정부 기후 길라잡이’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지구의 기후 문제를 직접 가르치고, 한 달에 2회 가량 자작곡 등으로 기후 위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정 목사는 “기후 사역은 동떨어진 것이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의 선취로 가져오신 궁극적인 생명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며 “교회 성도들도 해당 사역에 적극 공감하고 참여하면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 사역의 일환으로 교회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전부 비건(채식)이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 가운데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 그 대안으로 채식을 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일주일에 하루만 채식해도 3~4㎏의 탄소 배출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요리 경력 10년 차에 접어든 정 목사는 매주 주일예배 후 직접 채식요리를 만들어 성도들에게 대접한다. 비록 고기는 없지만 음식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오는 7~8월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일반인들을 교회로 초대해 채식 요리를 제공하고, 에너지 전력소비를 줄이기 위한 ‘수요기후미식’ 사역도 기획 중이다.
정 목사는 “지구의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실천하는 시간들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실 것이라 믿는다”며 “희망의교회는 그렇게 인식되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갑자기 찾아온 회심
원래 정 목사는 음악과 춤을 좋아했던 가수 지망생이었다. 한때는 이승철, 이예린 등 유명가수들의 백업댄서로도 활동했다. 한창 음악과 춤이 인생의 전부였을 때 그는 춤연습실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회심의 음성이었다. 정 목사는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볼 정도로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라고 고백했다.
신학을 열심히 공부한 후 목회의 길로 들어선 그는 최우선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교회 내부에 정립하고 싶었다. 예술가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던 만큼 자연스레 목회에서도 색다른 생각과 계획을 가졌다. 특히 기존 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인 독점되는 권위를 지양하고 ‘모두가 주체가 되는 교회’를 지향했다. 말 그대로 모두가 동등한 입장과 위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에 따라 교회 안에서 세대 성별 직위를 구별하지 않았고, 교회의 모든 일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정 목사는 “기존 교회 체제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며 “교회 내부 문제를 먼저 혁신해야 가나안 성도들을 붙잡고 외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밥상 공동체
향후에도 정 목사와 희망의교회의 색다른 사역은 계속될 예정이다. 특히 기후 사역을 보다 확장해 희망의 레스토랑(비건 식당)을 차리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음식을 먹으며 지구와 생명을 생각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밥상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소통하는 것이 큰 방향성이다. 덤으로 해당 사역으로 인해 교회 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보육원 출신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정 목사는 “세상과 적극 소통하고 생명 존중으로 통합을 이뤄 낙심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진정한 희망의 교회로 거듭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성도들과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의정부=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