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경기도 평택 진위면 은산리 산을 오른다. 그때마다 시편 121편을 노래한 시인의 심정이 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그렇다. 나그네 순례길 팔순을 지나면서 깨닫는 것은 내가 나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이었다. 할 일 많은 이 땅에서 수많은 직업 중에 의사의 길을 걷게 하시고 기독교 병원을 세워 사랑의 치유를 하게 하심도 주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이끄심이다.
내가 자주 야간 산행을 하며 새벽 산을 묵상하는 것도 평생 나를 인도하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함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밝아 오는 새벽을 맞아 함께 복음을 전할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신(눅 6:12~17) 그 모습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 그렇게 이 죄인도 부르셨다.
그래서 나는 은산리 새벽 산에 솟아나는 샘물처럼 우리 병원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영육을 치유하는 베데스다 샘(요 5:2~7)이 되고 실로암 못(요 9:7)이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산이 좋아서 알피니스트로 등정을 이어왔다. 세계의 주봉인 히말라야를 정복한 수많은 산악인에 비교하면 어린아이이고, 평생 환우들을 돌봐왔기에 직업적으로 산을 오를 시간을 얻을 수 없었지만 아마추어 산악인으로 자주 산을 찾았다. 산은 내 인생의 교사다. 새벽 효(曉)에 뫼 산(山), 새벽 산이 내 아호이다. 최근 펴낸 회고록도 ‘새벽 산에 솟아나는 샘물’(창조문예사)로 이름 지었다.
새벽 산이 좋아서 은산리에 칩거하고 있는 나는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살았던 미국 뉴잉글랜드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을 가끔 생각한다. 일찍이 명문 하버드대를 나와 세속을 떠나 홀로 고향의 호숫가에 은거하면서 사색과 집필에 전념해 ‘월든’을 남긴 사상가 소로. 그는 오늘의 미국 정신을 형성한 ‘시민의 불복종’의 작가이기도 하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나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같은 세계적 인물들의 존경을 받았던 소로다. 그의 사상은 자연 친화적 삶, 신앙과 독서, 그리고 깊은 명상에서 나온 것이다.
나의 일생이 어디 그런 인물에 비견할 수 있을까마는, 내가 은산리 새벽 산의 사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나의 사랑하는 아내 황영희 박사와 후손들께 전하려 한다. 나와 고락을 함께한 이 시대의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님 등 소중한 의료진과 더불어 국민일보 독자들께도 진솔한 이야기로 들려드리고 싶다. 후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없겠다.
약력= 1941년 출생, 경남중·고 및 부산대의대 졸업, 고려대 의과대학원(석·박사), 효산의료재단(샘병원) 설립자, 효산국제교육재단(경기수원외국인학교) 이사장, 국민훈장 석류장 수여.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