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6월 강원도 양구 펀치볼에 도착했다. 능선에 참호를 파던 날 밤 적들은 포격을 퍼부었다. 소총수였던 나는 M1 개런드 소총으로 무장했다. 하루는 중대장과 함께 전투 순찰에 나섰다. 불행히도 중대장은 지뢰를 밟았고 발이 절단됐다. 전쟁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첫 사건이었다. 하루하루 죽음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전장에서의 예배는 간단했다. 흙 위에 무릎을 꿇고 거룩한 교감을 나누며 기도했다. 전쟁이 한창일 때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평화로웠다. 지금도 생각한다. 누군가 6·25전쟁에 다시 참전할 것인지 묻는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일조했다는 만족감이 크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번영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진심으로 기쁜 일이다.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미 육군 상병으로 1951년부터 1년 가까이 6·25전쟁에 참전했던 조지 수자(93)씨의 고백이다. 2007년부터 전 세계 6·25전쟁 참전용사를 초청해 보은 행사를 하는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펴낸 ‘위대한 헌신, 자유의 꽃을 피우다(표지)’라는 제목의 참전용사 수기집에 실린 글이다.
총 219쪽 분량의 수기집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와 전사자·실종자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수기집에 실린 이들과 유가족들은 새에덴교회 초청으로 한국을 한 번 이상 방문했었다. 이들의 생생한 증언은 재미 한국전 역사가인 수잔 키의 손을 통해 다듬어졌다.
참전용사들은 하나 같이 ‘가치 있는 희생이었다’고 평했다.
탱크 중대 부소대장으로 참전했던 루이스 레이먼드(89) 중사의 회고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내 주변의 많은 미국인은 그들의 희생이 정말 가치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 희생이 가치 있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한국은 아시아에 공산주의가 퍼지는 걸 막아냈고 결국 자유국가로 성장했다. 세상의 독재자와 폭군들에게 자유 민주주의가 무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되고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수기집에는 ‘명예훈장’ 수훈자의 영웅담도 등장한다.
명예훈장은 미군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훈장으로 목숨을 걸고 눈에 띄는 용감함과 담대함을 보여준 소수의 군인에게 수여한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꼽히는 발도메로 로페즈(1925~1950) 미 해병대 중위가 그 주인공이다.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이던 25세의 로페즈 중위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인천으로 상륙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해안 방벽을 선두에서 넘는 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는 용감한 군인이었고 늘 부하들 앞에 섰다.
방벽을 넘은 직후 로페즈 중위는 북한군 벙커로 수류탄을 던지기 위해 안전핀을 뽑았지만 곧바로 심각한 총상을 입고 만다. 큰 부상 때문에 곧 터질 수류탄을 적에게 던질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몸으로 덮쳐 산화했다. 자신을 희생해 소대원들을 구한 것이었다.
명예훈장은 그가 전사한 이듬해 로페즈 중위의 아버지가 대신 받았다. 로페즈 중위의 이야기는 해병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종군기자 제리 소프는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서 “용기 있는 죽음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고 썼다. 로페즈 중위는 명예훈장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까지 수훈했다.
수기집에는 그의 조카손자 매튜 로페즈(40)씨가 글을 썼다. 그는 “큰할아버지의 희생은 저희에게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 15:13)’는 성경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줬다”고 고백했다.
참전용사들은 정전협정 후에도 한국 땅을 밟았고 그들의 감동 또한 특별하다.
미 공군 의무병으로 1954년부터 1년 동안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티머시 휘트모어(88)씨의 기록이다.
“어느 날 한 소년이 배를 부여잡고 울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그 어린아이가 기침을 하자 5㎝ 길이의 회충이 콧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우리는 급히 구충약을 주고 다른 곳도 진찰했다. 가난한 나라에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모든 게 열악했지만 한국인들의 신앙심만큼은 강했다. 칠면조 구이도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구유 속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듯한 감격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앙적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들이 부르는 성탄절 찬송을 들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교회가 수기집을 발간한 건 ‘기억’을 위해서였다. 소강석 목사는 서문에서 “참전용사들이 이제는 세월이 흘러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까지 잊을 수 없다”면서 “낯선 땅에 와 청춘을 바쳐 싸워준 참전용사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