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트 진입 막는 혈관 속 칼슘 덩어리… 깎아내고 간다

입력 2023-06-26 18:16 수정 2023-06-27 17:36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허성호 교수가 심장 관상동맥의 심한 석회화로 스텐트 시술이 어려운 환자에게 회전죽종절제술을 시행하기에 앞서 혈관에 투입될 특수 기계를 살펴보고 있다. 성빈센트병원 제공

얼마 전 가슴 통증과 숨참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60대 A씨. 검사 결과 심장 관상동맥에 중증의 석회화 병변(혈관 내벽에 칼슘이 쌓여 딱딱해짐)을 동반한 협착이 확인돼 협심증 진단을 받았다. 심한 석회화로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그물망)를 넣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심장 근육에 산소·영양분을 공급하는 3개의 큰 혈관이 관상동맥이다. 이 혈관 안쪽 벽에 이른바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쌓이는 동맥경화가 진행돼 혈관이 좁아지고 막히면 협심증, 심근경색이 초래된다. 관상동맥 질환은 암에 이어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힌다.

좁아지거나 막힌 심장 혈관을 다시 뚫는 치료법 중 하나가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CI)’로 불리는 스텐트 삽입술이다. 허벅지나 손목 동맥을 통해 가느다란 관을 심장까지 밀어올린 뒤 관 속으로 넣은 고무 풍선으로 혈관을 넓혀주고 그물망을 펼쳐 다시 좁아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관상동맥이 70% 이상 좁아지거나 기능적 평가에서 의미있는 수치가 나오면 PCI 같은 조치를 서둘러 취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서 8만3460건의 PCI가 이뤄졌다.

그런데 앞서 A씨처럼 심장 혈관이 동맥경화로 딱딱해지고 석회화가 중증으로 진행된 경우 풍선이나 스텐트가 병변 부위를 통과할 수 없어 PCI가 어렵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허성호 심장혈관센터 교수는 26일 “혈관의 4분의 3 이상이 칼슘으로 둘러쌓여 있다면 스텐트가 통과돼도 충분한 혈관 내경 확보가 되지 않아 협심증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스텐트 시술에 앞서 관상동맥 내에 딱딱하게 굳은 칼슘 덩어리(죽상경화판 혹은 죽종)를 특수 기계로 깎아내 혈관 내 공간을 확보하는 이른바 ‘회전죽종절제술(ROTA)’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다이아몬드 가루가 코팅된 쇠구슬(burr) 형태 기계를 분당 18만번 이상 고속 회전시켜 석회화 병변을 매우 작은 입자로 갈아내는 방식이다. 앞쪽에 가이드 철선이 달린 쇠구슬은 1.25~2.50㎜ 사이에 다양한 크기가 나와 있다. 관상동맥의 직경은 2.5~4㎜로 삽입 시 충분히 지날 수 있다. 죽상경화판을 완전히 제거하기 보다는 ‘콘크리트에 균열을 내듯’ 쇠구슬로 충격을 줘서 모양을 변형시켜 스텐트 시술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허 교수는 “깍여진 죽종은 5마이크로미터(㎛)의 미세 조각으로 분해되고 이는 적혈구 크기(7.5~8㎛)보다 작아서 모세혈관을 막지 않고 통과하게 되며 체내의 ‘망상내피계’ 즉, 비장에서 걸러진다”고 했다.

혈관 내에 낀 칼슘 덩어리를 깎는 기계가 삽입된 모습. 의료기기 회사 제공

이런 회전죽종절제술은 2000년 국내 도입돼 관상동맥 중재(스텐트) 시술의 보조적 역할로 자리잡았다. 빅5 병원과 성빈센트병원 등을 중심으로 연간 30~50건씩 시행되고 있다. 2021년 기준 전체 시술 건수는 731건이다. 하지만 시술이 복잡하고 합병증 위험이 있어 의료진 경험과 노하우가 매우 중요하다. 쇠구슬이 고속 회전되는 관계로 시술 시 자칫 혈관 박리가 생기거나 깎여진 동맥경화 입자에 의해 분지 혈관이 막히는 경우 급성 심근경색이 초래될 수 있어서다. 실제 선행 연구에서 회전죽종절제술을 이용한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가 일반 스텐트 시술 환자에 비해 합병증인 심근경색 등의 발생 빈도가 높다고 보고돼 논란이 있어 왔다.

하지만 최근 허 교수팀은 석회화 병변 절삭 후 스텐트를 시술받은 환자에서 심근경색 발생 여부가 예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Reviews in Cardiovascular Medicine)에 발표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연구팀이 2010년 1월~2019년 10월 국내 9개기관에서 회전죽종절제술을 이용해 스텐트 시술을 받은 540명을 대상으로 시술 후 1년간 급성 심근경색 등 주요 심뇌혈관 사건 발생 빈도를 분석한 결과 발생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 예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관상동맥 내 심각한 석회화 병변을 깎아내는 회전죽종절제술이 스텐트 시술에 앞서 적절한 조치이고 시술 성공률을 높이고 혈관 재협착 등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난이도 높은 혈관 시술이 증가하면서 회전죽종절제술이 필요한 심각한 관상동맥 석회화 환자들이 느는 추세”라며 “고령,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만성 콩팥기능 저하(투석), 흡연 등이 위험 인자”라고 강조했다.

건강검진할 때 받는 관상동맥 칼슘CT에서 칼슘 스코어가 400 넘게 나오면 심장 혈관 협착 위험이 높은 만큼, 추가 정밀진단이 필요하다. 중년 이후 고혈압·당뇨 등 위험 인자가 많다면 2년 마다, 그렇지 않으면 5년 마다 관상동맥 칼슘CT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권고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