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카티 대항마 온다 … ‘이중 항체 치료제’ 하반기 국내 상륙

입력 2023-06-27 04:04
새로운 기전의 이중 항체 치료제
식약처 GIFI 1호 '룬수미오' 주목
면역세포와 암세포에 동시 적용
카티의 부족한 부분 보완 가능성

'기성품'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고
빅5 아닌 가까운 병원에서도 치료
환자 신약혜택 빨리 받게 하려면
조속한 건강보험 적용 나서야

<출처:아이스톡>

최근 배우 안성기의 투병으로 관심을 모은 혈액암. 말 그대로 혈액 및 림프계에 생긴 암이다. 암세포가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신체 곳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수술 치료가 불가능하다. 진단 시 사실상 암이 전신에 퍼져 있어 위·폐·간 등 특정 부위에 생기는 고형암과 달리 치료가 까다롭다. 흔히 알려진 백혈병(30%)을 비롯해 림프종(50%) 다발성골수종(10%) 등이 해당되며 각각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

근래 혈액암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개인 맞춤형 치료제인 ‘카티(CAR-T)’였다. 환자 자신의 몸에서 면역세포(T세포)를 뽑아 체외에서 암세포를 잘 인식하는 유전자(CAR)를 붙여 다시 투입, 암세포 살상력을 높인 치료제다. 혈액암 유형에 따라 약 40~80%의 환자에게 ‘완전 관해(암세포가 사라짐)’가 나타나 완치의 꿈을 안겨줬다. 또 치료 반응이 길게 유지돼 평생 한 번만 투여해도 되는 ‘원샷 항암제’로 불린다. 이 같은 혁신성 때문에 국내 도입된 첫 카티 치료제(킴리아)가 지난해 4월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환자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이중 항체’ 두 표적 항원 동시 결합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카티’의 대항마가 등장할지도 관심이다. 혈액암 치료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새로운 기전의 ‘이중 항체 치료제’가 하반기 국내 상륙을 예고하고 있다. 치료 대상이 겹치는 데다 카티의 아쉬운 점을 보완할 수 있어 구원 투수로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다. 혈액암 치료 영역에 혁신 신약 간 진검 승부가 예상된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이중 항체 치료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글로벌혁신제품 신속심사 지원(GIFT) 1호 약’으로 지정된 ‘룬수미오(성분명 모수네투주맙)’다. GIFT는 혁신 의약품이 신속히 상용화도록 임상 개발 초기부터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허가 심사 기간을 최대 75% 단축할 수 있다. 룬수미오도 이 제도를 통해 임상 단계에서부터 허가 신청돼 오는 7~9월 중에는 승인이 날 전망이다. 또 같은 기전으로 개발된 ‘컬럼비(성분명 글로피타맙)’ 역시 4분기에는 허가받을 것으로 알려진다.


이중 항체 치료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항체를 하나로 합친 약제로, 두 표적 항원에 동시 결합한다. 항암제를 시작으로 황반변성, 혈우병 등 다른 영역 치료제 개발의 신(新) 플랫폼으로 급부상했다. 룬수미오와 컬럼비의 경우 한 쪽은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에, 한 쪽은 암을 일으키는 악성 B세포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면역세포와 암세포를 연결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다가가도록 도와 항암 효과를 높이도록 한 방법이다.

이런 기전 덕분에 이중 항체 치료제는 하나의 표적만을 갖는 다른 바이오의약품(단클론 항체)에 비해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카티처럼 개인 맞춤 치료제가 아닌, ‘기성품’임에도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이유다.

카티는 맞춤형 치료제의 특성상, ‘모두의 치료제’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환자의 T세포를 뽑아 치료제로 만드는 데는 별도 제조 시설에서 4~6주가 걸리기 때문에 암이 빠르게 진행되는 일부 혈액암종에서는 다른 치료제가 필요했다. 또 생산 공정이 고도로 복잡한 탓에 현재로선 일정 수준의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에서만 치료할 수 있다. 카티 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병원에서도 혈액암 환자에게 쉽고 빠르게 투약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의료계는 머지 않아 국내에 선보일 이중 항체 치료제가 그런 미충족 수요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성품인 만큼 바로 사용할 수 있고 굳이 빅5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카티처럼 ‘원샷’은 아니지만 무기한 치료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투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완전 관해율이 카티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으며 치료 반응 역시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됐다.

허가와 함께 신속한 급여화 필요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격전지는 ‘재발성 또는 불응성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DLBCL)’이다. 혈액암의 절반을 차지하는 림프종 중 95%가 비호지킨림프종이며 그들의 40~50%가 DLBCL, 20%는 소포성 림프종(FL)이 해당된다.

특히 DLBCL은 공격적인 암으로, 빠르게 진행돼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절실했다. 매년 국내에서 3000명이 발생하고 있다. FL은 증상이 약하고 암이 느리게 진행되는 탓에 약 80%의 환자가 3기 혹은 4기에 뒤늦게 발견된다. 환자 5명 중 1명은 치료 시작 후 2년 안에 암이 진행하거나 재발하며 치료를 거듭할수록 악화돼 보다 효과적인 치료제가 필요했다. 연간 1000명 가량 진단받는다.

컬럼비는 DLBCL과 FL에서 전환된 거대 B세포 림프종, 룬수미오는 FL 환자 가운데 기존 항암제(리툭시맙)를 쓴 1·2차 치료에 불응했거나 재발한 경우 3차 이상의 치료제로 허가 신청이 이뤄졌다. 치료 대상이 되는 국내 환자는 각각 500명, 20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다만 환자들이 이런 혁신 신약의 혜택을 빨리 받으려면 허가 후 조속한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 룬수미오와 컬럼비의 치료 비용은 미국 기준으로 각각 2억4000만원(6개월간 8회 투여), 4억5000만원(8.5개월간 12회 투여) 가량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는 26일 “이중 특이 항체 신약은 카티에 필적하는 효과를 보이며 혈액암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큰 변곡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 신약에 대한 국내 허가 심사가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건보 급여 검토 역시 조속히 이뤄져 환자와 가족들이 하루 빨리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