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의자 신상공개는 위헌? 헌재 판단 나온다

입력 2023-06-23 04:07

헌법재판소가 성범죄 피의자 신상공개를 규정한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정부·여당이 강력범죄 가해자 신상공개 범위 확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헌재 결정이 주목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5조 1항의 위헌 여부를 따져 달라는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행정1부(재판장 황승태)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접수해 심리 중이다. 해당 조항은 ‘검사·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오로지 공익을 위해 필요할 때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이른바 ‘n번방’ 사건과 연루된 성착취물 구매자 A씨 사건에서 출발했다. A씨는 성착취물 구매뿐 아니라 음란물 제작 및 유포·아동 성매매 혐의도 유죄로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그는 수사를 받던 중 경찰이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하자 이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이면서 신상공개는 피했지만, 1심 본안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A씨가 항소하면서 사건은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갔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조항에 위헌성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신상공개 관련 조항은) 어떠한 절차규정 없이 정보 공개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오직 사법경찰관의 결정에만 맡기고 있어 적법절차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제청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범죄 가해자가 낸 헌법소원이 아닌 법원이 직접 법리 검토를 거쳐 위헌 여부 판단을 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헌재도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에 대한 첫 정식 판단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 결정에 따라 신상공개 범죄자 범위를 테러·마약·아동 대상 성범죄·재판 중인 피고인으로까지 확대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정부 여당의 움직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