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30주년까지는 이어가보자.” 딸은 아버지의 그 말에 동의했다. 수년째 누적되는 적자와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그 이상은 무리였다. 아버지는 그러나 30주년까지 버티지 못하고 2020년 6월 세상을 떠났다. 딸은 혼자서 잡지를 만들었고, 2021년 11월 마침내 30주년 기념호(181호)를 냈다. 그리고 휴간을 선언했다. 30년 만의 멈춤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 올해 6월 ‘녹색평론’이 복간됐다. 호수를 이어받아 182호가 된 복간호에는 ‘2023년 여름호’라고 적혀 있다. 새로 출발하면서 발행 주기를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맞은 편에 있는 녹색평론 사무실.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대부’라고 불렸던 김종철 선생이 앉았던 자리에 그의 딸이 앉아 있었다. 녹색평론의 새 발행·편집인 김정현(48)이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저랑 둘이서 녹색평론을 만들었다. 잡지를 낼 때마다 적자가 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편집실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내가 걱정할 때마다 아버지는 일희일비하지 말고 30주년까지만 해보자고 하셨다. 그 이후엔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느냐 하시면서”라고 말했다.
잡지를 계속 이어가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김정현의 뜻이었다. 그는 2008년부터 녹색평론에서 상근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그는 “오랫동안 잡지를 만들었고 누구보다 녹색평론을 좋아했지만 30주년 기념호 이후엔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면서 “독자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었고, 우리 작업이 사회에서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30년간 아버지가 굴려오던 수레바퀴를 서서히 멈추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김정현의 생각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바뀌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를 접하며 그는 “녹색평론이 그냥 잡지가 아니었구나, 잡지 그 이상이었구나, 그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뜻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해온 일은 이론을 세우는 게 아니었다. 현실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글을 썼고 잡지를 만들었다”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길은 전집을 만들거나 기념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잡지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종철 없는 녹색평론’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종철 없는 녹색평론이 녹색평론일 수 있을까. 김종철이라는 독보적인 사상가이자 탁월한 편집인이 있었기 때문에 녹색평론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 중 하나일 수 있었다.
김정현은 “지금까지의 녹색평론과 앞으로의 녹색평론은 아무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큰 시각과 깊이를 가진 잡지를 만들진 못할 것이다.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아버지랑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제가 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의 녹색평론이 김종철이라는 선생이 만든 교과서였고 지침 같은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녹색평론은 친구가 되고 싶다”며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잡지가 되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지금 누구의 눈에나 생태적 위기, 사회적 대혼란이 보이지 않느냐. 이런 파국적 상황에서 근본적 원인을 탐구하는 일을 계속하겠지만 무력감이나 체념,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마음을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마음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고,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어둠에 갇히지 않도록 함께 얘기하고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잡지가 되려고 한다.”
김정현은 복간호 머리말에서 “녹색평론은 지혜와 지식뿐만 아니라 용기와 위로, 번민을 나누기 위한 장”이라고 썼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민감한 영혼들이 계속 나아갈 힘을 얻는 공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결같이 노력해왔다”고 녹색평론을 설명한 김종철의 말과 이어져있다. 그리고 김정현이야말로 녹색평론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어온 사람에 속한다. 그는 열 살쯤부터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걱정을 안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만큼 생태적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했고, 농사가 아니라면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어둠을 녹색평론을 읽으며 버텨왔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녹색평론 일을 도왔다. 영문 번역도 하고 서평 같은 짧은 글을 쓰기도 했다. 녹색평론 홈페이지를 만든 것도 그였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녹색평론에 상근하며 잡지·단행본 편집은 물론 독자·필자 관리까지 도맡았다.
김정현은 이제 아버지가 없는 사무실에서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잡지들 뒤로 자신의 잡지를 한 권씩 늘려가려고 한다. 사무실 한 켠에는 김종철의 얼굴이 그려진 작은 그림이 놓여 있다. 김정현은 “아버지 추모글에 아버지이면서 동료이면서 친구이면서 스승이라고 썼다”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저는 아버지도 잃고 친구도 잃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공백이 말할 수 없이 컸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김종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는 아버지가 정직한 지식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 분 같았다. 이 시대에 하루 하루 생계나 생활을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분들을 대신해서 깊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거기서 얻은 결론을 정직하게 발언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출발한 녹색평론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김정현은 “생태위기에 공감하는 분들 중에서도 녹색평론이 비현실적이고 근본주의적 주장만 한다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른바 현실주의적 대응의 결과가 지금 눈 앞에 (더 심화된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삶의 방식과 사회의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더 서둘러야 했다는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녹색평론은 앞으로도 구독료 중심 운영 방침을 고수할 생각이다. 다만 휴간 등을 거치며 줄어든 구독자들을 다시 회복할 때까지 후원회원을 모집하기로 했다. 김정현은 “후원보다 구독료로 운영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녹색평론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후원회원으로 들어와서 같이 노력해보자고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현은 독자를 녹색평론을 함께 이어가는 사람들이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본다. 그는 “아버지는 녹색평론 구독자가 안정적으로 1만명쯤 되면 우리 사회에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겠냐, 변화를 만들 세력을 구축하지 않겠느냐, 그런 말씀을 종종 하셨다”면서 “녹색평론이 추구하는 변화에 동의하는 독자들이 없다면 냉정하게 사라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녹색평론 독자들은 전국에서 자발적인 독자모임을 조직해 잡지를 함께 읽고 토론한다. 한 때는 독자모임 수가 60∼70개에 달했다. 이번 복간호에는 21개 독자모임이 모임 광고를 실었다. 독자모임을 하고 싶어서 서점을 열었다는 독자도 있다.
김정현은 “우리 잡지의 자랑 중 하나가 독자모임”이라며 “그 모임들이 동력을 잃지 않도록 잡지를 열심히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간 기간에도 무엇보다 독자모임에게 송구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