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짧은 생을 마감한 영유아들이 수년간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이 있을지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소재 미파악 영유아 2236명의 1%인 23명 표본조사만으로도 여러 건의 범죄 혐의가 드러난 상태다. 특히 감사원이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표본조사한 사건 중 상당수는 보호자들이 연락을 받지 않거나 현장 방문을 회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영아 2명은 각각 생후 하루 만에 살해돼 냉장고에 유기됐다. 친모인 30대 여성은 아기 2명을 산부인과에서 출산해 출산기록은 등록됐지만 출생신고는 하지 않았다. 2018년 11월 첫아기를 살해한 범행이 4년7개월이나 지나서야 드러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여성은 1년 뒤인 2019년 11월에도 아기를 병원에서 낳은 뒤 병원 부근에서 살해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12살 딸, 10살 아들, 8살 딸 자녀 3명을 둔 이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또 임신하자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이 여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실질심사는 23일 열린다.
표본 23명 중 혐의가 발견된 건 수원 사건만이 아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2일 화성시에 거주하는 20대 여성도 입건해 조사 중이다. 이 여성은 2021년 1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한 뒤 생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인터넷에서 아기를 데려간다는 사람을 찾게 돼 아기를 넘겼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기를 데려간 사람의 연락처 등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경찰은 생활고를 겪어온 이 여성이 홀로 아기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또 2년 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충남 천안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40대 여성도 입건했다. 다만 이 여성은 경기도 안성시로 건너가 아기를 직접 키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 여성은 출산 후 아기를 직접 돌봐왔다”고 말했다. 감사원 통보에 따른 수사와는 별개로 이날 새벽 울산 남구 달동의 한 아파트단지 쓰레기장에서도 영아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CCTV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냉장고에 시신을 유기한 영아 살해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 6월 부산에서는 30대 여성이 2014년 9월과 2016년 1월 각각 출산한 아기의 시신을 동거남의 집 냉장고에 보관하다 체포됐다. 이 여성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7월에는 서울 서래마을에 살던 프랑스 여성이 2002년과 2003년 자신이 출산한 2명을 살해한 뒤 자택 냉동고에 수년간 보관하다 적발됐다. 이 여성이 휴가차 본국에 돌아갔을 때 남편이 영아 시신 2구를 발견해 신고했다. 그는 프랑스 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영아 살해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데 대해 사회 시스템상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영아살해범죄는 근본적으로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출산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공교육 과정에서 아기를 잉태하고, 부모가 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자질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