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다소 식혀주는 비가 내린 지난 21일 오전 김호경(59)씨는 그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도로 위를 걸었다. 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김의현씨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발보다 커서 헐떡이는 탓에 신발끈이 단단히 매여있었다. 김씨는 “처음으로 아들 신발을 신었다”며 “‘의현아 오늘은 엄마하고 같이 걷자’ 하고 이렇게 나왔다”고 웃어 보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지난 8일부터 매일 8.8㎞의 도로를 걷는다. 참사 날짜(10월 29일)에 맞춰 오전 10시29분에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출발해 서대문과 마포대교를 지나 국회 앞까지 3시간가량을 걷는다. 다음달 1일까지 18일간 행진을 마치면 참사 희생자 수만큼인 159㎞를 걷게 된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에도, 우비를 뚫고 들어오는 장대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우비를 챙겨입고 나온 유가족들은 다들 아이와 함께 걷는 마음이라고 했다. 고 진세은씨의 아버지 진정호(50)씨도 4년 전 유럽여행을 갈 때 딸이 선물해준 신발을 신었다. 고 송은지씨 아버지 송후봉(62)씨는 “행진하다보면 우리 딸이 자주 가던 곳,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곳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고 했다.
고 이동민씨 아버지 이성기(65)씨는 행진 대열의 맨 뒤를 지키고 있었다. 함께 걷는 이들이 다치진 않을까 그는 주변 안전을 특히나 신경썼다. 실제 한 버스가 대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졌다.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가거나 대열 옆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차들도 있었다. “길을 막지 말라” “조용히 하라”는 일부 시민들의 비난 목소리가 걸음을 무겁게 했다.
유가족들은 시민들을 향해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쳤다. 고 최민석(22) 어머니 김희정(55)씨는 “유가족을 비난하시는 분들에게도 이 법은 필요하다”고 했다.
행진 중간중간 합류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출발 할 때 25명 정도였던 행렬이 국회 앞에 도착했을 땐 40명 가까이로 불어 있었다.
행진에 처음 동참했다는 금희경(46)씨는 “여기 부모들이 이전엔 길에서 소리 지르고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이분들의 답답한 마음이 내게도 전달된다”고 말했다. 정태걸씨는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참여해주면 너무나 힘이 된다고 하더라”며 “참사를 바라보기가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오늘 함께 걸으니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국회 앞 농성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들이 행진 대열을 반겼다. 지난 20일부터 단식에 들어간 고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50)씨는 “국회의원들이 하지 않으니 유가족들이 더 세게 나설 수밖에 없다”며 “6월 임시국회 내에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달라”고 호소했다.
글·사진=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