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꼬리자르기’ 사라질까… 임원별로 책임영역 배분

입력 2023-06-23 04:04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협회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불완전 판매와 직원 횡령 등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금융회사 임원별로 책임 영역을 명시해둔 ‘책무구조도’를 만들도록 한 게 핵심이다. 반복적·조직적 사고 등 내부통제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판단되면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금융위원회는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를 열고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와 대규모 횡령 등 금융권 사고가 잇따르자 10개월간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왔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 CEO는 앞으로 각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야 한다. 책무구조도는 이미 영국 등 선진국에서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국내 대형 시중은행 경우 20~30명이 책무 배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책무 대상에는 이사회 의장도 포함된다. 사외이사는 정보 접근성 제약 등을 고려해 제외됐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를 제출받은 뒤 필요한 경우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

CEO는 책무구조도의 작성 책임자로, 각 임원의 통제 활동을 총괄 관리한다.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는 조직적이거나 장기간·반복적, 광범위한 사고 발생 등 ‘시스템적 실패’로 판단될 때다. 금융권 내부통제 태스크포스(TF) 출범 초기 CEO 중징계 방안 등이 거론됐던 점에 비춰 이는 한발 물러선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별 건 모두 CEO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 역할도 명확해진다.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정책 수립과 집행에 관한 사항이 이사회의 심·의결 대상에 추가됐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가 신설된다.

금융당국은 사후적 ‘제재’가 아니라 ‘예방’에 초점을 맞춘 개선안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회사별 특성과 경영 여건에 맞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했다는 얘기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한 경우에는 면책 또는 감경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시스템적 실패’와 ‘상당한 주의’ 등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이 금융회사의 혁신 경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사들의 보수적 성향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