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장집 딸… 아버지에게 배운 ‘경근일신’ 새기며 경영”

입력 2023-06-23 04:08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영원무역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성 부회장은 “경영자로서 ‘Never Stop Questioning(질문을 멈추지 마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닮고 싶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유명한 영원무역은 1974년 창립 이후 49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경기도 성남의 다운웨어 공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연 매출 3조9000억원, 전 세계 9만명의 직원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 성기학 회장의 둘째 딸인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은 최근 아버지에게 배운 경영철학을 담은 ‘영원한 수업-나의 아버지에게 배운 경영의 모든 것’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성 부회장은 2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공장집 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셨다”면서 “어린 시절엔 아버지 따라간 공장에서 원단을 갖고 놀면서 즐거웠는데, 지금은 가족(직원) 모두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팔리지 않는 옷을 만들까봐 그게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성 부회장의 언론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만난 사람=이성규 경제부장

-‘영원한 수업’은 어떻게 쓰게 됐나.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서 하프돔이라는 돌산을 봤다. 노스페이스 로고는 거기서 영감을 보고 만들어졌다. 그 돌산을 보면서 저것처럼 영원무역을 영원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창업주의 기업 철학을 잘 기억하고 계승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근면성실을 중시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라’는 뜻인 경근일신(敬謹日新) 정신 같다. 책을 쓰겠다고 하면 ‘그럴 시간이 나겠니’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 원고를 다 쓰기 전까지 말씀드리지 않았다. 집필 후 출간해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하신 말씀도 ‘경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라’였다.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같이 공부하신다. 노스페이스의 브랜드 슬로건이 ‘Never Stop Exploring(탐험을 멈추지 마라)’인데, 저희 아버지는 ‘Never Stop Learning(배움)’ ‘Never Stop Questioning(질문)’이신 것 같다.”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수행은 8년째이고, 지난해엔 부회장직에 올랐다. 어떤 생각을 갖고 일해 왔나.

“2002년 입사했으니 벌써 21년차다. 입사 초기엔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외로웠다. 그때 도움을 준 ‘언니’들이 어느새 임원이 돼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오너 2세 경영자’라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 2세로서 경영을 할 때 장점도 있다. 고민하고 계획한 것을 소신껏 만들어갈 때 임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건 큰 장점이다. 단점은 오너 앞에서 자기 의견을 내는 게 쉽지 않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임직원들의 말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

-1970~80년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섬유산업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어려운 환경에 놓인 것은 사실이다. 제조업이 다 그렇지만 섬유의류산업은 특히 기술력 배양에서 어렵다. 대학 패션전공 학과에서도 옷을 만드는 데 중요한 패턴기술자, 소재전문가들이 현업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 양산되지 않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최근 한 유명 작가께서도 ‘영원한 수업’을 읽었다며 편지를 보내오셨다. 본인은 SF 장르 소설을 쓰면서 늘 섬유산업을 첨단산업이라고 써왔다며 섬유로 만든 우주선을 개발하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혁신을 하면서 소비 트렌드에 맞는 ‘팔리는 옷’을 만들면 앞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내년이 창립 50주년이다. 100년, 200년이 지나도 적자를 내지 않을 자신이 있나.

“적자를 안 내야 직원들 월급 주고 세금도 낼 수 있다(웃음). 우선 지금까지 잘해왔던 OEM(주문자생산방식) 사업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 친환경 소재와 자동화에 강점이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함으로써 산업환경 변화에 대응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트렌드화 되기 전부터 섬유업계에서는 혁신적 신소재 및 친환경 소재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물 사용량도 많고 탄소배출도 많은 분야여서 어떻게 하면 순환경제를 이뤄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2300여개 상장사가 있는데 주주들이 ‘영원 주식을 갖고 있으면 밤에 잠이 잘 온다’는 말을 듣는 게 경영자로서의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언제였나. 어떻게 극복했는지.

“미국 유학 시절 원인 모를 피부병에 걸려 수년간 고생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우울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때 치료해주신 의사 분이 하나님이 낫게 해주실 거라면서 격려해 줬다. 그러면서 늘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눈뜨자마자 하루를 더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일과는 어떤가.

“새벽형 인간이라 늘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조용한 시간에 오늘과 이번 주간의 중요 사안들을 챙기고, 회장님 지시사항 중 놓친 것이 없는지 점검한다. 출근하면 서류 검토와 갖가지 회의 등으로 바쁘지만 직원 중 생일자가 있는 날은 함께 축하송을 부르는 시간도 갖는다.”


정리=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