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사 모르는 영유아 2000명… 출생아 관리체계 구축해야

입력 2023-06-23 04:01
국민일보DB

아파트 가정집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 지 하루 만에 영아 유기 정황이 또 드러났다. 태어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우리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진 아이가 2000명이 넘는다니 충격적이다. 감사원은 22일 출생 미신고 아동 조사 과정에서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유기됐다고 밝혔다. 조사가 진행되면 비슷한 영아 대상 범죄가 더 나올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태어난 영유아 중 2236명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태어났으나 생사 확인이 안 된 아이들이다. 감사원이 이들 중 약 1%인 23명을 추려 지방자치단체에 실제로 아이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게 했다. 그랬더니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런 일이 밝혀진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서는 한 여성이 2018·2019년 연달아 출산했으나 두 아이 모두 살해하고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했다.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생후 76일 만에 숨진 아이도 출생 미신고 영유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태어난 한 아이는 친모가 출산 직후 베이비박스에 유기했다. 어제는 경기도 화성에서 영아 유기 정황이 드러났다. 2021년 친모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생후 한 달 된 자녀를 넘겼다고 진술했는데 정황이 의심스럽다. 아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재한다.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살해해 유기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자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복지부는 이번 조사에서 제외된 나머지 2000여명의 아이들이 안전한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빈틈없도록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태어났으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 아이’가 나오는 건 정부 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안 해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5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병원은 행정기관에 출생을 통보할 의무가 없다. 의료기관과 출생신고를 받는 지자체 간에 연결고리가 없는 것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 출석해 ‘의료기관 출생 통보제’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 정보를 직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하는 제도다. 의료계가 행정 부담과 전산상 책임 소재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나 명분이 없다.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도’ 역시 서둘러야 한다. 더 이상 숨지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출생아 관리체계를 보다 근본적으로 제대로 구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