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십원빵과 한국은행

입력 2023-06-23 04:11

미국의 국립공원이나 놀이공원 같은 유명 관광지에 가면 ‘Collector Pennies’라는 자판기가 많다. 1센트 동전(페니)을 넣고 돌리면 프레스가 동전을 압축해 관광지 이름이나 간단한 그림을 새긴다. 비용은 25센트 동전 2개다. ‘pressed penny’라고 불린다. 1000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작은 기념품을 가질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1센트 동전을 훼손해 50센트에 판매하는 영리 행위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주화를 변경, 훼손, 절단, 위조하면 벌금이나 징역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미 재무부는 1980년 한 시민의 질문에 “형법상 위법행위에는 사기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며 “동전을 기념품으로 압축하는 단순한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경북 경주에서 유명한 ‘십원빵’이 디자인을 바꿔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행이 ‘영리 목적으로 화폐도안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할 수 없다’는 ‘화폐도안 이용기준’을 근거로 디자인 변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십원빵은 2019년 경주 일대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1966년 발행된 첫 10원짜리 동전 디자인을 본떴다. 앞면에는 다보탑, 뒷면에는 액면가가 적혀 있다. 3000원인 십원빵 내부에는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 있다. 일본 업자들이 십원빵을 모방한 십엔빵을 만들어 팔아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화폐도안의 영리 목적 이용을 금지하는 이유로 위변조 심리 조장, 화폐의 품위와 신뢰성 저하, 화폐유통시스템 교란 우려 등을 들었다. 십원빵을 방치하면 10원짜리 유통시스템이 교란되고, 위변조 심리가 조장될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십원빵 브랜드가 지역 명물 먹거리에 머물지 않고 프랜차이즈화되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 이용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기준을 조금 바꾸면 되고, 바꾸는 게 어려우면 융통성 있게 해석하면 될 일이다. 요즘 10원짜리를 구경하기도 사용하기도 힘들다. 굳이 십원빵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야 했는지 의문이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