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소신이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전용사를 위한 보은 행사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소 목사는 “기억함은 구원의 빛이며 망각은 포로 상태로 돌아가는 첩경”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인들과 함께 지난 17년 동안 쌓아온 보은의 탑은 ‘한없는 감사’로 돌아오고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7차례 참전용사 보은 행사를 이어왔다. 소회가 남다를것 같은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참전용사 초청 행사는 국가기관도 하기 힘들 정도로 적지 않은 경비와 대규모 자원봉사자, 기획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주변에서도 너무 힘이 드니 그만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제 마음의 감동이 결코 그만둘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민족의 평화, 한·미 우호증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17년째 진정성을 가지고 하니까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공영방송에서 다큐멘터리까지 방영해 국민에게 섬기는 교회의 이미지를 전할 수 있었다. 올해 참전용사 초청행사에도 대통령께서 축사를 보내 주시고 국회의장과 국가보훈부 장관께서도 참석하셔서 위로와 감사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로 공격받는데 ‘목회적 대형교회’로서 사회적 환원과 선순환을 일으키고 나라와 민족을 섬기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후손들이 참전용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아픔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민족은 절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할 때 유비무환의 미래와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 야드바솀 박물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기억함은 구원의 빛이다. 그러나 망각은 포로 상태로 돌아가는 첩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6·25전쟁 같은 참상이 재발하지 않는다. 또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공산화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3만5000명의 전사자와 10만명의 부상자를 내면서까지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워 줬다. 피로 맺은 혈맹이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전폭적인 군사·경제 지원을 했다. 이제는 경제·군사 동맹을 넘어 신앙적 우호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때 양국이 번성할 뿐 아니라 평화통일도 이룰 수 있다. 더 나아가 세계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는 선진대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를 위한 행사가 보은과 보훈의 의미를 일깨운것 같다.
“보은이 한 인간의 품격이라면 보훈은 그 국가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에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고 참전용사들에게 영웅의 제복을 입히고 국가의 품격을 격상시킨 건 구순을 넘긴 국내외 참전용사 어르신과 보훈 가족들에게 큰 자부심이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민간 차원에서 참전용사들께 보은할 뿐 아니라 보훈 정신을 함양하는 한 알의 밀알로 쓰임 받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점점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잊고 있다. 그래서 먼저 우리 스스로 이런 신앙과 정신을 되새기고 자녀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행사를 하고 있다. 또 교계와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파수꾼 역할도 하고 싶다.”
-그동안 어려움도 만만찮았을 텐데.
“한국과 미국·캐나다·호주·튀르키예·콜롬비아·에티오피아·필리핀·태국 등 8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등 6000여명을 초청하거나 참전국을 방문해 보은 행사를 했다. 참전용사들의 항공권부터 호텔과 체류 비용까지 교회가 지원했다. 특히 고령인 참전용사들의 안전을 위해 비즈니스석으로 모셨다. 국가 기관도 하기 힘든 일을 지역교회가 17년 동안 했으니 왜 어려움이 없었겠나.
그러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성도들의 땀과 눈물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참전용사들을 환영하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돼 통역 봉사로 참여하는 걸 보면 더욱 감회에 젖게 된다. 부족하지만 담임목사인 저와 장로님들, 온 성도가 마음을 모으지 못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협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다.
“요즘에는 아무리 옳고 좋은 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먼저 자신의 마음에 감동이 와야 하고 소통과 공감이 필요하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처음 시작할 때도 성도들에게 행사의 의의와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제가 만난 노병과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2007년 1월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받기 위해 마틴 루터킹 퍼레이드 전야제에 참석했는데 한 흑인 노병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더듬거리는 말투로 “동두천 의정부 수원 평택”이라고 말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6·25전쟁 이후 한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도 없고 형편이 어려워 못 간다”고 하면서 울먹였다. 그분의 이름은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였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하면서 “제가 반드시 한국으로 초청하겠습니다. 친구분들도 함께 오셔도 됩니다”라고 약속을 했다.
저는 그 분이 친구분 5~6명 정도와 함께 오실 줄 알았다. 그런데 50여 명과 함께 오셨다. 성도들이 그런 이야기에 감동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행사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준 이들에 대한 보은의 마음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뤘다. 그뿐 아니라 해마다 3·1절과 6·25전쟁, 광복절이 다가오면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성도들의 머리와 가슴에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역사의식과 투철한 국가관,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 기간 메타버스를 활용한 보은행사도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 때 도저히 현장 행사를 열 수 없었다. 간절하니 길이 보였다. 우리 교회는 이미 코로나 초기부터 온라인 예배를 도입해 인프라가 있었다. 그래서 2020년 세계 최초로 줌(Zoom)으로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했고 이듬 해에는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메타버스 안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90대 노병을 20대 모습으로 복원한 뒤 제가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감동적이었다. 코로나로 고립돼 외로움 속에 살던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온라인 초청행사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께 마스크를 비롯해 보건 용품을 보내기도 했다.”
-고령의 참전용사를 배려해 내년부터 ‘찾아가는 보은 행사’로 전환하는데.
“참전용사들의 안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 초청 행사는 올해가 마지막이고 내년부터 현지로 찾아가려 계획하고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마지막 한 분의 참전용사가 살아계실 때까지 그분을 찾아뵙고 손 잡고 기도하며 위로해 드리고 싶다.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의 나라에서 경제 번영을 이룰 수 있었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산다’고 전하고 싶다. 마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계속 참전용사 보은 행사를 진행하려 한다. 더불어 20주년에는 가능하다면 다시 참전용사들을 국내로 초청해 보은 행사를 열고 싶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