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는 증권감독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와 해당 거래소 최고경영자, 그리고 또 하나의 대형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를 증권법 위반 혐의로 제소하면서 코인 등 각종 가상자산의 가격 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SEC가 모든 가상자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고 해당하지 않는 코인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제소가 가상자산 시장에 부정적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SEC 위원장인 개리 겐슬러의 입장은 제소된 가상자산이 ‘증권(證券)’의 성격을 지니는데 ‘상품(商品)’처럼 거래됐다는 것이다. 즉 증권임에도 감독책임을 지는 SEC의 규제를 적절히 따르지 않은 채 거래함으로써 해당 거래소나 경영진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불법의 핵심인 증권이라는 성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프로그램 자체를 판매했다면 이것은 투자를 받은 것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고 돈을 버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상품일 뿐 증권이 아니다. 반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파는 사업체에 투자금을 넣고 그 프로그램을 팔아 번 돈을 계약에 따라 나눠 주기로 약속했다면 이것은 증권을 발행하고 돈을 투자받은 것이다.
이런 증권의 성격은 하위(Howey) 테스트라는 원칙으로 확인되는데, 핵심은 ①공동 사업에 자금을 투자하며 ②투자에 따른 이익이 발생하며 ③타인의 노력으로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주주가 회사에 자금을 투자하고 회사가 수익을 내면 이에 따라 배당받거나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거두는 주식이 대표적인 증권이다. 그래서 투자와 이에 따른 수익이 제대로 확보될 수 있도록 주식의 발행·거래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해 규제와 관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주식과 같은 증권을 규제하고 관리하기 시작한 건 100년이 되지 않는다. 1929년 대공황 이후로 1933년 증권법과 1934년 증권거래법을 통해 증권시장을 규율하는 법체계가 마련되면서부터다. 겐슬러 위원장도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는데, 규제가 마련되기 이전인 1920년대 미국 증권시장은 각종 사기가 판치는 혼란의 시기였고 지금 미국 가상자산 시장이 당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는 금융사기 때문에 증권시장에 대한 불신 그리고 주식의 불안정성이 팽배했고, 이런 문제가 대공황을 촉발한 1929년 주가 대폭락에 일조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증권의 성격을 지니는 투자 설계에 대해서는 쌍방 계약과 거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증권의 발행 및 유통과 관련해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고 문제 발생 시 책임을 물리는 방식으로 증권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1930년대에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투자 설계에 책임을 부과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신뢰할 수 있는 증권시장이 발전했고, 자본이 안정적으로 조달되면서 경제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자산의 성격이 무엇이든지 충분히 감독받지 않은 위험한 투자 설계가 퍼질 때마다 증권시장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고 그 이후 경제는 요동쳤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 22장 21절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처럼 다른 이의 재산을 자신이 맡아 관리하도록 투자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재산의 주인에게 성과가 제대로 가도록 하는 것이 투자 설계의 기본이어야 한다. 특히 이번 미국 SEC의 조처를 보면서 그런 투자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부실 투자 설계가 금융시장의 흔들림으로 이어지거나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하고 관리할 책임은 금융당국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성태윤(연세대 교수·경제학부)